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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일상이 되다

▲ 최 윤 미

 

전주교대 신문사 편집국장

국제 공예비엔날레에 가보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물건들이

 

예술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예술’과 ‘일상’. 그리고 ‘일상’과 ‘예술’. 언뜻 보면 이 두 단어는 상반된 이미지를 우리에게 준다. 일단 나에게는 ‘예술’은 비싸고 어려운 어떤 것, 하지만 ‘일상’은 나와 늘 함께하는 무엇이라고 느껴진다. 내가 ‘예술’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피카소이다. 파블로 피카소, 학교다닐 때의 미술책에도 흔히 등장하는 그 이름 피카소.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피카소를 통해 예술에 친근감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처음 피카소의 그림을 봤을 때 내가 알던 그림들이랑은 너무 달라서 나는 그 그림에서 전혀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 ‘도대체 이 그림은 뭐지?’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그의 그림은 몇 십억, 몇 백억에 팔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모르지만 그들만이 아는 ‘예술’의 세계가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의 예술적인 생각을 이해 못하는 내가 꼭 바보 같다고 느껴졌다. 또한 그림의 가격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 ‘예술’은 소유할 수 없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예술은 나에게 더욱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일상은 그들의 예술과는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왔다.

 

청주 국제 공예비엔날레를 가기 전까지는.

 

이번 청주 국제 공예 비엔날레의 기획의도가 바로 ‘일상, 예술이 되다’였다. 이러한 기획의도를 비엔날레에 다녀와서 알게 되었는데 내가 전시회를 보면서 느꼈던 점이 바로 이거였다.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는, 일상과 예술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나는 볼 수 있었다. 누구나 알 만한 작품들이 우리 일상 속의 물건, 비치타올이나 커피 잔으로 나타나 있기도 하고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물건들이 의미를 가지고 예술로 탈바꿈되어있기도 했다.

 

전시회에는 작가명과 작품명이 있으면 작품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전시감독님의 뜻에 따라 전시회에는 작품을 구별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없었다. 그리고 전시회에서 작품을 설명해주셨던 분의 말씀에 따르면 작품명이 없는 것에는 감독님이 의도했던 바가 하나 더 있었다. 작품에 관해서는 어느 작가의 작품인지, 이 작품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떠한 정보도 관람객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정말로 자신이 가지고 싶은 단 하나의 작품을 ‘구매’한다고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의 구매로 이어지는 진짜 선택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고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예술을 ‘소유’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그들만의 예술이 아니다. 우리의 ‘예술’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는 어느 시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우리가 예술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일 때 예술은 더 이상 가까기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다. 우리 일상 속의 한 부분일 수도 있고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예술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술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예술’은 우리에게로 와 ‘일상’이 되었다. (전주교대 실과교육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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