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을 스쳐 숨이 나가고 코끝을 스쳐 숨이 들어옵니다. 호흡을 조절합니다."
아침 햇살이 마룻바닥 깊숙이 들어오는 넓은 홀에는 조용한 인도 명상음악이 낮게 흐르고 그 사이로 선생님의 작은 목소리가 돋들린 뿐 정적이 가득하다. 창의 롤스크린 사이로 들어온 햇살은 내 이마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코를 어루만지고 다시 목으로 내려와 잠시 머물다가 복부로 내려간다. 그리고는 이내 내 작은 몸 전체를 휘돌아 나를 감싼다. 몸이 이완되어 있는 나는 햇살의 유혹에 대책 없이 내 모두를 내어주고 만다.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이 모두를 맡긴 채 반가부좌로 앉아 있다.
초겨울의 아침햇살은 내 유년의 아침처럼 나를 평화롭게 한다. 나는 내게 스며든 햇살 자락을 보고 싶어 가느스름하게 눈을 떠본다. 햇살은 우측 창문 새로 들어와 홀 중앙에 앉아 있는 내게 사선으로 비치고 있다. 나는 그 햇살 줄기를 타고 어디론가 미끄러지고 싶어진다. 미끄러져 닿는 곳엔 아픔도 슬픔도 없을 거야. 햇살 가득한 고요함과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의 향기가 가득할거야. 그곳으로 가자. 그곳으로 가 보자.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가슴을 열어봅니다."
요가 선생님의 멘트가 바뀌고 있다. 시선을 돌려 앞을 보니 낮은 단에 앉아 시범을 보이고 있는 선생님의 감은 눈과, 눈이 감겼으므로 더 야무져 보이는 입매가 눈에 들어온다.
엊그제 이곳을 방문했을 때 "처음이세요?"하며 웃던 선생님은 선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 눈빛과 대조적으로 웃는 표정 뒤로 굳게 닫히는 입술이 문득 나를 쓸쓸하게 했다. 저 맑은 웃음 뒤에 감추고 있는 슬픔이 있단 말인가? 아니, 왜 나는 감추고 있는 슬픔을 읽어낸단 말인가? 어느 틈에 내게 스며들어온 습성이란 말인가?
기쁨이 가득 찬 사람은 슬픔을 안고 있는 사람의 그늘을 알아채지 못한다. 마음에 슬픔이 있는 사람은 상대방의 슬픔이 절로 전이되어 오기도 한다. 타인의 기쁨은 그들의 소유일 뿐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들의 정서와 동화될 수 없으므로 멀찍이 그들을 떼어놓고 싶어진다. 사실은 내가 슬금슬금 그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나를 들키고 싶지 않고 그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고 그들이 나를 이해해주는 것도, 내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도 모두가 싫다. 그래서 사실은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딸아이 방의 책상에 있던, 박민규의 소설 〈카스테라〉를 읽고 난 후 냉장고 안에 오롯이 남아있던 부드럽고 달콤한 카스텔라의 환영이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작가는 그 맛을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맛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가장 소중한 것들과 사회에 해가 되는 것들을 모두 냉장고 안에 가둔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한 조각의 카스텔라만이 남아있다. 모든 것을 가두어 정화시켰을 때 한 조각의 달콤한 카스텔라가 되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몸을 기웁니다. 왼쪽 늑골을 좌악 펴서 사이사이를 넓힙니다."
나를 감싸고 있는 이 아침햇살을 가두고 싶어진다. 순도 놓은 아침의 맑은 햇살을 내 안에 오롯이 가두어 들인다. 따스하고 포근한 햇살은 그대로 내 심장으로 직진해 들어온다. 빛바랜 오만과 잘못된 자만, 후회와 반성, 그리고 결코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는 나의 잘못된 행동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의 잘못과,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타인에게 준 상처들까지 햇살과 함께 가두어 들인다.
허리를 젖히며, 두 다리를 꼬아 비틀어 짜며, 옆구리를 늘리며, 무릎을 펴서 하늘 높이 치켜들며 나는 내 자신에게 명령한다. 그들에게 아침햇살을 보게 하자. 그들을 아침햇살과 함께 가두자.
동작은 어느새 사바아사나로 바뀌고 있다. 호흡을 조절하고 마음을 푸욱 내려놓는다. 선생님이 홀의 불을 끄고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는 소리가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고 나는 한조각의 카스텔라로 남는다.※ 수필가 양경심씨는 '지구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수필집 '진분홍 실내화'를 냈으며, 현재 군산여상 교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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