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화 피아니스트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은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쓴 1802년에 하나의 악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인 1803년에 서양음악사의 전환기를 장식할 곡을 창조한다. 이 곡의 원고 첫장에는 겸손하게 필기된 작곡가의 이름 위에 '보나파르트 헌정' 이라고 굵은 글씨로 표기 됐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곡품이 초연될 3개월 전인 1804년 5월, 프랑스 혁명의 집정이었든 나폴레옹이 자기자신을 황제로 공포하고 나서자, 여기에 배신감을 느낀 베토벤은 원고 위의 보나파르트의 이름을 종이가 찢어지도록 긁어 지웠다고 한다. 결국 이 곡은 1806년 '영웅 교향곡(Eroica Symphony), 위대한 인간의 기억을 기념하며' 라는 곡명으로 출판됐다. 에로이카(Eroica)는 이태리어로 '영웅적' 이라는 뜻을 지니는 단어다.
영웅의 의미를 사전에서는 '위험과 불우에 처한 또한 약자의 입장에서 전인류의 안녕을 위해 용기와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정의로운 일을 하는 자' 라고 되어있다. 이 뜻은 원래 군사적인 용감한 행위와 관련돼 사용 됐으나 근대에는 도덕적 고결함과 관련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허나 사실 어느 인물이 사회에서 영웅적 지위로 우상화되기 위해서는 위의 면모 뿐 아니라 뛰어난 능력과 통찰력 있는 시대정신까지 갖춰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 영웅이 완벽하길 기대한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을 이룩해 영웅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 프랑스혁명은 그가 나타나기 전 벌써 진행중이었다. 미라보, 라파예트, 로베스피에르 등 각자 다른 사상을 가진 혁명가들에 의한 연쇄적 사건들이 축적되고 있었으며, 1799년 혁명 막판에 나타난 나폴레옹 장군은 쿠데타를 성공시켜 혁명의 절정을 찍는다. 여기서 그는 이런 발언을 한다.
"우리는 이제 혁명의 로맨스를 마쳤으며 지금부터 혁명의 역사를 시작해야만 한다."
프랑스 전 국민의 공공이익을 존중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 질서 있는 정부를 창립한 나폴레옹은 그 후 나폴레오닉 전쟁이 벌어질 동안 프랑스를 방어하며 군주국들의 연합군 공격에서 승리를 거듭하면서 프랑스를 거대한 제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패배한 나라들의 영토를 점령하면서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전파하는 일에 충실했다.
시대는 나폴레옹의 능력을 필요로 했고 그는 기꺼이 이 도전에 응했을 뿐만아니라 이를 능가하며 시대의 영웅이 된 것이다.
한편 베토벤은 비슷한 시기에 영웅 교향곡으로 음악세계에 혁신의 획을 긋는다. 영웅 교향곡은 그 전에 작곡된 어느 교향곡보다 길고 복잡했다. 1악장이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어느 교향곡 전체보다 길었으니 청중이 경악한 것은 이해가 간다. 초연 후 반응은 명확히 나눠졌다. 너무 복잡하고 난해해서 감상하기 어렵다는 시각과 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시각. 두번째의 시각을 지지한 자들은 음악이 청중 중심의 엔트테인먼트 에서 작곡가의 예술적 가능성을 도전하는 매체로 진화했다고 주장했고 또한 청중의 책임도 이에 따라 순수한 즐김에서 공부를 통한 깨달음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베토벤은 이 행위를 통해 관습에 거대한 도전장을 내밀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명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예술적 숙명을 추구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고려해아 할 심리적인 사실이 또 있다. 청각의 악화로 고통을 겪었던 그는 1802년 완치의 꿈을 버려야 된다는 현실에 처하고 절망에 빠진다. 그 때 작성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는 이렇게 써있다. "사람들에게 '귀가 잘 안 들리니 좀 더 크게 말해주세요' 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보다 더 민감 해야 될 감각이 약하다고 선언 할 수 있겠는가."
작곡가로서의 필수의 능력을 잃어가면서도 사명감을 잃지않고 인류를 위한 위대한 작품들을 남긴 베토벤 또한 시대의 영웅이 아니겠는가?
1821년,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음을 맞이한 나폴레옹의 소식을 접한 베토벤은 말했다.
"나는 이 슬픈 날을 위한 음악을 17년 전에 작곡해놓았다네."
이것이 바로 영웅 교향곡 2악장, 장송행진곡이다.
※박종화 피아니스트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최연소 입상, 최우수연주가상, 부조니 루빈스타인 산탄데르 등 국제 유수 콩쿠르에서 입상했으며 33세에 서울대교수로 임용돼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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