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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농악 계승자 이상백씨 "전통문화 꽃 피울 때까지 굿쟁이 역할"

대학서 농악과 첫 인연, "채 잡을 때 알 수 없는 열정 느껴" / 지역풍물단체 활동 23년째"진실된 풍물모습 알리기 온힘"

▲ 라금추 명인의 전수자로 부안 농악의 맥을 잇고 있는 이상백씨가 흥겨운 가락에 맞춰 꽹꽈리를 치고 있다.
민족의 혼을 담아 우리의 문화가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23년째 연습을 거듭하고 있는 부안의 굿쟁이가 있다.

 

"나 자신을 감시하며 떳떳하자!"는 소신 아래 "예술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자세로 하루에도 7~8시간씩 꽹과리와 함께 악을 탄다.

 

그가 바로 라금추(75·전북무형문화재 제7호) 명인의 전수자로 부안 농악의 맥을 잇고 있는 이상백(47·천지인 대표)씨다.

 

사람들은 흔히 그를 실력 있는 '굿쟁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의 손이 현란하게 쇠(꽹과리) 위에서 춤을 출 때면 어느새 보는 이들의 어깨를 들썩들썩하게 만든다. 왜소한 몸에서 엄청난 에너지도 품어져 나온다.

 

이 씨는 중학생 시절부터 레드제플린과 지미페이지처럼 밴드를 하고 싶어 기타에 심취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다. 이후 코미디언 남성남 선생과 인연을 맺고 프로덕션에서 일하게 됐으나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우석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들어가게 된다.

 

이후 그는 대학 동아리에서 농악과의 첫 인연을 맺게 된다. 신입생들을 위한 동아리 탐방 당시 풍물동아리 '청산'에서 선배의 권유로 '땅 도땅 도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땅이다'를 치고 난 뒤 어릴 적 밴드를 하고 싶어 했던 열정이 용솟았다고 한다.

 

그는 "처음 꽹과리를 접한 뒤 밀려오는 알 수 없는 열정이 종일 나를 붙들어 맸다" 며 "그 단순한 가락을 매일 매일 치며 난 자연스럽게 풍물굿에 빠져 들었고 그 해 1학기가 끝날 무렵 청산의 상쇠가 됐고 중앙동아리 '차돌패'에서 함께 활동했던 장고잽이 최호라는 친구와의 만남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농악의 전문인으로 부안에서 활동 중이다. 대표를 맡고 있는 풍물단체인 '천지인'과 함께 부안 농악의 전통성을 잇고 있다. 천지인에는 지난 23년간의 열정도 담겨져 있다.

 

특히 이상백 풍물굿 20주년 기념공연에서는 사물놀이의 명인 김덕수씨와 함께 풀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대학 내 풍물 동아리를 이끌던 그가 전문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또 그의 손을 거친 후배들도 수많다. 그 후배들은 부안뿐 아니라 전주와 고창, 순천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후배가 아닌 제자라고 해야 걸맞겠다.

 

그가 똑 부러지게 한마디를 던진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판'만 깔아지면 된다"고.

 

이 씨는 "진실된 모습을 담고 있는 풍물을 알려나가겠다. 내 스스로에 대한 교육의 끝도 없다. 하지만 쉼 없는 노력으로 부안은 물론 민족의 혼을 담아 우리의 문화가 꽃을 피워 나가는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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