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사상가였던 정여립(1546∼1589)은 뛰어난 인재였다. 선조 3년인 1570년 24세의 나이에 5등으로 문과에 급제했다. 급제 나이가 평균 서른살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이른 성공이다.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총애를 받았고, 이이는 서인의 총수였으니 서인의 차세대 주자로 불릴만 했다.
그런데 이이가 죽고 서인이 몰락할 조짐을 보이자 정여립은 동인에 가담했다. 전주 출신인 정여립은 이를테면 동교동계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한 뒤 상도동계로 가서 동교동계를 원색적으로 공격한 경우인데 역사학자 이덕일은 이를 두고 "현대판 '철새 정치인의 원조'라 할만 하다."고 비유했다('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명분이 지배하던 성리학 사회에서 스승을 배신하는 행위는 비판 받을 일이었다. 당시엔 이 당(黨)에서 저 당으로 변신하는 행태도 흔치 않았다. 선조는 죽은 스승을 비판하는 정여립을 두고 사서(邪恕) 같은 인물로 비유했다. 사서는 송나라 때 자신을 도와 준 사마광을 배신한 인물로, 배은망덕의 표상이다.
대선 정국이다. 유력 인사들의 합종연횡이 꼬리를 물고 있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소장 개혁파 출신인 김성식 전 의원과 송호창 민주통합당 의원이 무소속 안철수 후보한테 갔다. 한때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정국을 좌지우지했던 동교동계 인사들이 대거 새누리당에 합류했다. 정치 변신의 백미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럴 망정 DJ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의원이나 이윤수 전 의원 같은 골수 동교동계 인사들이 새누리당에 둥지를 튼 걸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무상. '정치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말이 명언이란 걸 새삼 실감한다. 학계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정치합류를 탓할 수는 없다. 소신이나 철학도 없이 자기부정을 하면서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는 이른바 철새 정치인이 문제다. 정치이념이 다른 사람끼리, 또는 정파가 합종연횡하는 건 정치를 희화화시킨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정치발전에도 도움되지 않는다.
'동교동계의 변신'을 두고 DJ가 지하에서 뭐라 할지 흥미롭다. 잘한 일이라 할지, 선조처럼 사서 같은 인물로 멸시할지 궁금하다. 선거 때마다 철새 정치인을 보는 건 고역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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