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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출신 정남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장 "환자 진료할 때 항상 내 가족이라 생각"

대담 = 조상진 선임기자 - 난치병 치료모델·새로운 항암제 연구개발에 주력

▲ 정남식 병원장은"의사는 성실하게 봉사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안봉주기자 bjahn@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우리나라 서양식 병원의 효시다. 1885년 광혜원 창립 이래 127년 동안 의료계의 가장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며 민족적 고난과 호흡을 같이했다. 더불어 기독교 정신을 전파하면서 '임상하면 세브란스병원'이라는 자긍심으로 가득하다. 의료진 등 직원수만 6000명이 넘고 외래환자 9000여 명 등 하루 3만5000여 명이 북적인다. 거대한 함정과도 같은 이 병원을 이끄는 정남식 병원장(60)은 우리나라 최고의 심장전문가로 꼽히는 인물.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 등 'VIP 전담의사'로 이름이 높다. 그런 만큼 그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3개월 전부터 인터뷰를 요청, 가까스로 시간을 잡았다. 병원장실에서 가진 1시간 30분의 인터뷰 동안 4-5차례 긴급한 용무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인터뷰가 중단됐다 이어지곤 했다.

 

-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지난 8월 병원장 취임 후 벌써 4개월이 되어 갑니다. 세브란스 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으로서, 한국 의료계의 선구자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27년 동안 정상의 교육기관이자 국민을 치료하는 의료기관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은 구성원들의 주인의식에서 나왔다고 생각해요. 주인이 갖는 생각과 주인 아닌 사람이 갖는 생각은 백이면 백 가지가 다르거든요. 생각이 다르니 행동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니 미래가 달라지는 거죠. 이것이 곧 세브란스 병원의 자부심입니다."

 

- 세브란스병원의 수장으로서, 환자들에 대해 남 다른 진료철학을 갖고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요?

 

"환자들이 왜 세브란스에 올까를 생각해 보면 분명해져요. 환자들은 어떤 절실함을 가지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병원을 찾는거죠. 환자들이 갖는 그 마음을 저희 병원이 얼마나 알아주고 있는지, 어떻게 환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것이냐가 과제에요. 내 가족처럼, 환자가 나의 아버지 어머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문진, 검사, 치료 등 전 과정에서 환자를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서 최선의 치료가 나온다고 생각해요.'내 몸을 맡길 수 있는 병원하면 세브란스'를 떠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병원장을 맡으시면서 역점을 두고 계시는 사업은?

 

"새로운 의료기술과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 중심 병원의 역할, 난치병을 치료하는 4차 병원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어요. 4차 병원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터닝포인트는 내년 초 문을 여는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에서부터 시작될 겁니다. 또 2014년 문을 여는 암병원은 환자 중심의 다학제 진료시스템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통합진료를 선보일 계획이에요. 난치병 치료모델을 개발하고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하는 데 집중해, 암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겁니다."

 

- 원장님은 의료계에서 'VIP 전담의사'라 불릴 만큼 정계 재계 문화계 거물인사들의 진료를 도맡아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나이가 들게 되면 대부분 심혈관에 문제가 생기다 보니, 심혈관 전문의인 제가 유명 환자들을 많이 보게 된 것 같아요."

 

- 특히 원장님은 김대중(DJ) 대통령 심장 주치의를 오랫동안 맡으셨습니다. 서거 당시에도 함께하며 돌보셨는데 힘들지 않았습니까?

 

"김 대통령께서는 100점짜리 환자였어요. 주치의를 100% 신뢰하고 지시사항을 철저히 따랐거든요. 80대 이상의 고령환자가 심장투석을 받을 경우 5년간 생존율이 20%가 안 되는데 김 대통령께서는 6년 반 동안 투석을 받았어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서거가 있은 후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어요. 휠체어를 탄 채 뙤약볕이 내려쬐는 서울역광장 분향소에서 2-3시간 동안 차례를 기다려 조문을 하고 연설을 한 후부터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 오랫동안 DJ를 돌보면서 에피소드가 많았을 텐데요?

 

"김 대통령께서는 의료진에게 한 번도 반말을 하지 않았어요. 겸손과 친절이 몸에 밴 환자였죠. 항상 '감사합니다, 수고하십니다'는 말을 잊지 않았거든요. 또 김 대통령께서는 책을 정말 좋아하셨어요. 14-15시간 걸리는 비행기 안에서도 의자를 뒤로 젖히는 법이 없이 꼿꼿하게 앉아 책을 보시거나 글을 쓰셨어요. 책 보는 습관 때문에 엉덩이에 물집이 많이 생기셨죠. 또 폭 넓고 깊은 독서와 해박한 지식, 열려있는 사고에 놀란 적이 많았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육군교도소에서 사형선고 받기 전 타협하지 않은 이유를 들었을 때에요. 김 대통령께서는'사람이 물에 빠져서도 죽고 아파서도 죽는데, 내가 불의와 타협해서 목숨을 연장하는 것은 두 번 죽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감동을 받았습니다."

 

- 김우중 회장 등 다른 분들 얘기도 꽤 있을 텐데요?

 

"김 회장님은 2005년 수술을 한 이후 요즘도 한두 달에 한 번씩 병원에 직접 나오셔서 진료 받고 있어요. 얘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지만 예전 대우 얘기는 잘 안 꺼내세요. 지금도 항상 세계 경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많은 구상을 하는 것을 보면서 '영원한 기업인'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DJ 대통령께서도 김 회장을 굉장히 훌륭한 기업인이라고 높이 평가했어요."

 

- 감수해야 할 어려움도 많을 것 같은데요?

 

"주말여행 중 병원으로 급히 불려 들어간 경우가 수차례고, 한밤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응급 전화' 벨 소리에 깨는 일이 부지기수였어요. 그것은 일반 환자도 마찬가지에요. 심장병의 특성상 그런 것이죠."

 

- 심장질환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심장은 몸의 엔진이에요. 모든 에너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기관이죠. 중년을 지나면 정기적으로 심장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많이 웃고 원만하게 사는 게 심장에 이롭고요. 심장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식생활 개선이 중요해요.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협심증과 심근경색이 특히 젊은 층이나 중년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분명 식습관에 문제가 있는 거죠. 또한 여가를 제대로 즐겨야 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은 여가활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지만 풀 곳이 마땅치 않아요. 정부와 기업체가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회체육시설을 많이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방법입니다."

 

- 그러면 원장님은 평소 건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궁급합니다.

 

"식습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육류를 적게 먹고 채소를 많이 먹는 식으로, 가능하면 선조들이 먹던 방식대로 소박하게 먹으려고 해요. 또 게을러서 꾸준히 못하지만 운동하려고 노력해요. 운동은 아령·팔굽혀펴기 등 근력운동과 빨리 걷기·등산 등 심폐기능을 좋게 하는 운동을 1주일에 3번 이상 합니다."

 

- 전국적으로 의대 열풍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의학교육에 몸담으셨는데 이에 대해?

 

"이것은 사회적 현상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저희가 학교 다닐 때 최고학과는 공대 화공학과, 전자공학과였거든요. 요즘 좋은 인재들이 의대로 들어오지만 의사는 그 목적이 직업인으로, 생활인으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의사는 성실하게 봉사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거지, 천재가 필요한 게 아녜요. 정말 우리가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국가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이공계통의 인재와 이걸 이끌어 갈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해요. 이런 산업이 뒷받침되지 않는 나라는 결코 오래 존치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것은 국가정책이 먼저 바뀌어야 해요.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의대 열풍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 의학전문대학원 폐지에 앞장섰는데 이유는 뭡니까?

 

"국가가 정책적으로 의전원을 만들어 훌륭한 의학자를 키우겠다는 게 근간이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이공계 학문이 의전원 들어가는 하나의 코스로 활용되는 면이 너무 많았어요. 훌륭한 의학자가 만들어지는 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그 이후에 자기 연구분야를 평생 연구해 가는 트랙이 중요한 거다, 그러려면 국가에서 먼 장래를 보고 기간산업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영국과 독일 일본 모두 6년제다, 그런데 가장 고비용 저효과인 미국이 8년제다. 미국은 의생명과학이 발전한 나라지만 전 세계에서 두뇌를 수입하는 나라다. 결국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지 의전원을 만들어서 6년을 8년으로 늘렸다고 해서 의생명과학이 발전하는 것 아니다. 그런 논리였죠."

 

- 의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는 뭐였습니까?

 

"저는 사실 인문계통이 더 맞는 분위기에서 자랐어요. 그런데 그 당시 우리 환경이 너무 열악했잖아요. 첫 번째는 세계로 나가서 일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죠. 두 번째는 전주 예수병원을 가면 분위기가 매우 좋았어요. 흰 가운 입고 외국에서 온 의사들이 환자를 고쳐주는 분위기가 꿈을 갖게 해줬어요. 저도 의사가 돼서, 외국에 나가 선교사 의사들처럼 환자를 고쳐주면서 살 수 있는 직업이 좋겠다, 그게 맞아 떨어진 거죠."

 

- 그러면 그 때부터 기독교를 믿었습니까?

 

"처음에 교회에 간 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간 게 아니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선교사가 하는 크리스천 바이블 세션에 들어갔어요."

 

- 고등학교 때 얘기인가요?

 

"그래요. 영어를 배우기 위한 욕심에서 교회를 다녔는데 (당시) 마음속에 하나님을 담고 그러지는 못했어요. 그게 교회와의 첫 인연이죠. 제가 해외에 나가기 위해서는 영어를 잘 해야겠다, 직업은 의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꿈이었는데 대학 졸업하면서 확 바뀌었죠."

 

- 존경하는 의학자는?

 

"저는 우리 세브란스를 일으킨 에비슨(O.R.A vison 1860-1956)박사를 존경합니다. 사람들이 에비슨 박사를 잘 모를 거예요. 슈바이처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에요. 슈바이처는 독일 사람으로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환자를 치료했지만 의사를 키우진 않았죠. 당시 아프리카 가는 거나 한국에 오는 거나 똑 같아요. 그런데 에비슨은 오셔서 왕도 봤고(진료) 백정도 봤어요. 백정이라는 제도를 없애도록 건의문도 올렸고요. 또 백정의 아들을 1대 의사로 만든 게 에비슨에요. 그래서 하류 클래스 사람들을 치료해 주면서 그 사람들을 교육시켜 의사를 만들고, 의사를 양성하는 의학교를 처음 만들었죠. 37년을 봉사하고 가셨어요. 그 다음에 연희전문학교를 언더우드가 설립하셨잖아요. 이 분은 몸이 아파서 2년 있다가 도로 돌아가셨어요. 그 이후로 17년을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양쪽 교장을 하셨어요."

 

- 세브란스 병원을 짓는데 돈을 기탁받은 것도 그 분이 아닌가요?

 

"그게 키워드에요. 그 분이 1893년에 오셔서 근무하다가 1900년도에 세브란스를 만드셨어요. 미국의 카네기 홀에서 열린 만국선교대회에서 에비슨이 강연을 했어요. 그 때 자선사업가인 세브란스(L.H. Severance 1838-1913)가 듣고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4만5000달러를 기부했어요. 나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인데 한국에 현대식 병원이 필요하다며 두 가지 말을 했어요. 배려와 일치화합(Comity and Unity)이에요. 배려가 뭐에요? 남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하라는 거예요. 남을 존중하지 않으면 배려할 수 없어요. 또 남을 배려하고 존중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이 분은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의 교수이자 시장의 주치의로 잘 나가는 사람이었죠. 또 만삭의 부인과 아이들이 있어서 여행하다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 심장의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1970년대 말 전공하게 됐는데요. 당시 심장의학은 개업도 할 수 없고, 그 당시 심장병 환자는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선천성 심장병이나 심장판막증 등 다 가난한 사람이 생기는 거니까요. 외국에 나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는 거고…. 그런데 잘 진단하고 치료하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환자를 많이 봤어요. 이건 정말 너무 보람 있는 거예요. 지금은 병 패턴이 바뀌었어요. 못살 때 생기는 심장병은 거의 다 없어지고 이제는 잘 살아서 생기는 심장병이 생겼어요."

 

- 끝으로 고향의 자라나는 후학들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청소년기의 꿈이 중요하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그 꿈을 위해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제가 그동안 여러 분을 만났지만 정말 남다른 노력을 했더라고요. DJ, 김우중씨 등, 다 꿈을 갖고 있었어요. 꿈이 중요한 건데 하다 보니까 꿈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꿈만을 위해서 전심을 다한 게 아니고. 꿈이라는 게 비전인데, 허황된 꿈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 꿈을 꿀 때 혼자 꾸는 것보다 부모 선배 친구와의 대화가 중요해요. 그리고 요즘 젊은 학도들은 IQ(지능지수)는 높은데 EQ(감성지수) NQ(공존지수) WQ(지혜지수)는 부족한 것 같아요.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나 고전읽기 등 인문학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 정남식 병원장과 본보 조상진 선임기자가 인터뷰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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