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가를 처음부터 유심히 들어보면 이 주제들이 반복되면서 일종의 사이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사이클 안에서는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형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엇갈린 박자들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일들. 그러나 우리에게 인상 깊게 남는 기억들은 삶에서의 엇갈린 박자들이 만들어준 선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 중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어 골목을 돌자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해변에서 파도를 피하려 뒷걸음질 치다 누구와 부딪쳐 첫 눈에 반했을 때. 새벽에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 교회에서 감명 깊은 종소리가 침묵을 깨며 울려 퍼질 때. 우는 아기를 안았는데 조용해졌을 때. 이런 순간들은 우리의 심장박동 소리를 더 뚜렷하게 들리게 해주며 우리가 아름다운 세상에서 숨 쉬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도시생활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침묵과 어둠의 기억마저 잊어버린 우리는 이 순간을 잘 잡아내지 못한다.
기대와 욕망. 어쩌면 이것들이 우리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욕망을 품은 인간은 무의식 적으로 어떤 기대를 품게 되고, 높은 기대는 인간이 계획을 세우게 만들며, 계획은 인간을 희열 또는 절망의 양쪽 길 중 하나로 인도한다. 여기서 희열을 얻게 됐다면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원했던 것인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만약 절망에 빠졌다 하더라도 인간은 좌절이나 분노 속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고 만다. 그리고 이 엉뚱한 춤은 멈출 줄 모른다. 끊긴 줄 모르는 소리와 빛들 안의 기대와 욕망.
바흐의 푸가들은 으뜸화음에서 시작해 으뜸화음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사이의 리듬과 화음들이 선을 긋고 색깔을 칠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주제들이 매번 다르게 발전해야 된다는 규칙 아래 리듬과 화음들은 다양한 색채로 변하면서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것이 똑같은 푸가를 매일 들어도 항상 다르게 들리는 이유다. 어떤 날은 평소에 잘 안 들리던 리듬이 부각돼 들리고, 어떤 날은 화음이 들리기 시작하며, 어떤 날은 기억했던 리듬이 완전히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냈지만 혼돈은 여전히 그 질서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혼돈이 신만이 즐길 수 있는 자유라면 바흐의 음악이야 말로 신에게 바쳐진 음악이다.
푸가는 듣는 이의 감각이 깨어있을수록 더 흥미로워진다. 더 많은 것들이 들리면서 질서 속에 숨은 혼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돈에서 질서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질서 안의 혼돈은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삶의 엇갈린 리듬들은 바로 이 혼돈들이다. 이를 즐길 수 있게 됐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외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현재 생존하는 작곡가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피에르 불레즈에게 필자는 이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작곡하실 때 음악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합니까?"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혼돈에서 질서를 찾으려 하며 또 질서 안에서 혼돈을 찾으려 하지. 그리고 그런 음악들을 좋아한다네."
바흐도 자신의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들이여 깨어나라. 너희들도 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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