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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와 정산의 시기에 부쳐

▲ 이 향 미

 

소리문화의 전당 운영팀장

2013년 새해 첫 달이 벌써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1월은 야심찬 새해 계획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임이 분명한데 나는 여전히 2012년을 붙잡고 있다. 2012실적보고서, 2012정산보고서, 2012결과보고서, 2012평가보고서란 이름하에 온갖 텍스트 및 수치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른바 지금은 보고와 정산의 시기인 셈이다.

 

보고(報告)는 지시 또는 감독하는 자에게 주어진 일의 내용이나 결과 따위를 말이나 글로 알림을 뜻하고 보고서는 보고하는 내용을 적은 글이나 문서를 말한다. 정산(精算)은 정밀하게 계산하거나 또는 그 계산하는 행위를 말한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한 대로 두 단어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 나는 일년동안 일한 내용을 정확하게 거짓을 고하지 않고 수치로 표현하여 상급기관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해야 하는 예술 행위는 매우 지난한 작업이다. 일년내내 보고서와 씨름하고 공연을 모니터하며 회의하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도 버거운 것이 예술활동의 보고서 작업이다. 느낌표와 웃음으로밖에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을 수치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물며 창조적 생산 활동에 매진해야 하는 예술가 집단은 오죽 할까 잠시 생각을 해본다. 그들은 본디 자유로운 영혼들인지라 계산과 얍삽함에 능통하지 못하다. 일전에 한 작가의 문예진흥기금 신청서 작성을 도와준 적이 있는데 돌이켜 보면 매우 어려운 문서작업이었다. 신청서 내용중에 흥미로운 항목이 하나 있는데 '전년도 정산을 하지 않은 단체는 신청불가'라는 조항이다. 기금을 받고도 정산을 하지 않는 단체는 다음연도 기금 수혜자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왜 이런 조항이 생겼을까'이다. 정산서를 제출하지 않는 단체가 많은 것일까? 정산이 어려워서 하지 못했나? 정산을 할 사람이 없었나?

 

무대에서는 예술가 집단이 가장 빛나지만 정산의 시기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행정가-기획자-예술가의 계급피라미드가 생성된다. 창작 작업에 대한 열정과 수많은 백스테이지의 노력은 보이지 않고, 논술과 미적분보다 어려운 '목적에 맞게 만들어 내는 보고서' 작업이 우선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 작업의 보고 및 정산 작업은 필요하다. 창작 작업에 대한 평가가 피드백이 되어 더 나은 예술활동의 밑거름이 되는 깨알정산작업은 필수적이다. 다만 이런 작업을 예술가 집단이 아닌 기획자 집단이 해야 하며, 이 기획자 집단은 행정가나 자금 제공자와는 별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가는 기획자 집단을 압박하지 않아야 하며 예술가 집단을 다그쳐서는 안된다. 기획자 집단은 동등하게 협업자로서 예술가 집단과 함께 창작활동의 한켠에 자리해야 한다. 아울러 이런 작업이 단순한 결과 보고와 수치상의 정산이 아닌 다음 작품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실현되지 않을 희망사항이겠지만 관객수, 유료율, 비용대비 회수율, 공연실행에 대한 증거용 자료 제출 등을 취조하듯이 요구하지 않았으면 한다. 관객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으며 어떤 소리를 질렀으며 무빙라이트와 모니터 스피커가 보컬의 소리와 표정을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하고 전달했는가? 공연 후 객석을 나가는 커플은 얼마나 행복해했으며 밴드들은 우리 공연장의 생동감에 만족했을까? 내년에 이 밴드를 다시 섭외한다면 어느 계절이 가장 좋을까? 앞으로 소수 매니아가 아닌 다수가 좋아하는 공연장르로서 지속가능성은 있는가? 이런 보고와 정산을 하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 이 팀장은 소리전당 개관 멤버로 현재 운영팀장으로 재직중이며, 전북대 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며 문화전반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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