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시인·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한국인에게 과연 미소란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돌이켜 보면 대개 세 가지 정도의 미소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우선 신라의 수막새에 새겨진 신라여성의 미소가 있다. 소박하고 진솔하다. 마음씨 좋은 시골 아낙네 같다. 사심이 없어 보이는 그 미소를 다시 눈여겨 살펴보니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 것이 김연아와 비슷하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수막새 그 미소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한국인의 미소일 것이다.
그 다음이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이다. 여기에는 백제인의 미소가 담겨 있다. 소박한 충청도 남성을 연상시킨다. 느긋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서민적이고 친근한 느낌도 불러일으킨다. 위압적인 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삼존불로 미루어 보아 당시 부처와 대중의 관계가 매우 친밀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마지막이 반가사유상의 미소이다. 그 자세나 형태미에서 반가사유상은 한국적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불상이다. 잔잔하면서도 장엄하다. 크기가 아니라 사유의 장엄함이다. 눈을 감은 것 같기도 하고 뜬 것 같기도 한 경계지점에서 고통 받는 중생의 아픔을 넉넉하게 포용하는 미소다. 반가사유상은 삼국통일 당시에 겪어야 했던 중생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생사의 경계에서 영원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한국의 여러 문화유산 중에서 서양인이 가장 감탄하는 것이 반가사유상이라고 한다. 그 평화로운 미소는 서양의 조각에서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에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지옥문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신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고뇌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고통은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평화는 없다. 아무리 평화를 갈망한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투쟁과 갈등으로 심판받는 인간의 숙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물주인 신과 인간의 경계가 분명하고 원죄를 먼저 설정하지 않고서는 그 신앙적 체계를 세울 수 없는 서양인들은 반가사유상의 미소와 같은 조각을 만들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형상이나 지옥문 앞에 심판을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이 그들의 영혼에 새겨진 인간의 얼굴인 것이다.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보여 준 미소가 앳된 소녀의 것이었다면 이번에 보여준 미소는 한층 성숙한 여성의 것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벽한 연기가 만들어낸 무념무상의 미소이다. 부드러우면서도 겸손하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하다. 그 부드러움 뒤에는 강렬함이 있고 겸손함 속에는 고난도의 훈련을 이겨낸 극기의 정신이 배어 있다. 김연아의 미소를 논하는 것은 그의 미소에서 한국인이 지닌 시련 극복의 의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그의 미소에서 새로운 앞날을 이끌어나갈 한국인의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급한 사람들은 김연아의 브랜드 가치가 6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도 하고 단군 이래 최대의 것이라 과장하기도 한다.
한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로 후진적 열등감을 위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상식장에서 캐나다 합창단이 애국가를 부를 때 느낀 감동은 세계 속의 한국을 실감하게 한 순간이었다. 김연아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김연아 정말 대단하잖아." 그 다음 날 지하철에서 한 나이 든 어른이 젊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되풀이한 말이다.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른의 마음속에는 무언가 젊은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김연아의 미소가 다시 생각나는 것은 그때 그 장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김연아가 전 세계인 앞에서 보여준 부드럽고 겸손한 미소. 그 미소가 더 크게 세계를 향해 떨쳐나가 우리 모두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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