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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근 교수가 말하는 김남곤 시선집 '사람은 사람이다'】시인의 사랑·자비의 인격 고스란히

 
 

이 시집의 제호인 '사람은 사람이다'는 제법 철학적인 명제인 듯싶다. 그러나 아니다. 이는 시인이 당연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무슨 격식도 논리도 없이 그냥 하는 말이다. 시인은 '사람은 사람이다'라고 입을 세 번만 달싹거려 보면 알 수 있는 말이란다. 물론 '사람이 사람이면 모두가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이어야 사람이 사람을 사람이라고 한다.'라는 반론도 있겠다. 그러나 시인은 '사람은 모두가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이니까 사람이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 '사람이니까'의 증거를 시인은 이 시집의 머리에서 우리들은 누구든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지순하기 그지없는 행렬'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동행'하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그 길에는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불고 눈보라도 쳤습니다. 정의롭게 살기 위해 고뇌하는 눈물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라고 이 세상이 비록 험악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으려고 흘리는 눈물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이 바로 이 한 권의 시집으로 엮였다. 이 시집은 그런 착한 눈물의 기록이다.

 

이 눈물은 동일시로 형성된다. 타인에게 심리적인 유대감을 느껴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남을 자기처럼 여기는 이 동일시는 사랑과 자비의 바탕이기도 하다.

 

오랜 만에 바닷가에 앉아

 

말없이 겸상을 했다

 

숟가락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내가 그렇게 따라했다.

 

어느 한 구석 입맛 누릴 혀끝 자리가 없었다. '라대곤 님의 밥상'중에서

 

바닷가에 앉아 겸상을 하는 기분은 어떨까. 아마도 그 넓은 바다를 다 채워야 할 듯하는 공복을 느낄 것이다. 광활한 바다와 한 점 혀끝자리와의 대비. 물결이 넘쳐오듯 입맛도 그렇게 끌어당길 텐데 상황은 정반대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의 반복운동과 대비해서 입맛이 당기지 않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숟가락의 반복운동은 아이러닉하다. 그러나 어쩌랴. 병이 깊어 상실한 상대방의 입맛이 전이되어 시인의 입맛도 잃었다. 이는 사랑의 동일시이다. 세상에는 상대야 어떻건 제 실속만 차리는 사람이 더러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황당한 사람은 없단다. 사람은 사람이란다.

 

우리는 모두 겸상하는 존재이다. 착한 눈만이 착한 이를 만나 겸상한다. 태조 이성계가 무학에게 "대사의 얼굴이 돼지같이 보인다."고 하자 대사는 "임금의 얼굴이 부처같이 보인다."고 했다. 웬 욕을 아첨으로 받나 싶어 그 까닭을 묻자 무학대사는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했단다. 시인은 그런 눈을 가졌다. '살아가면서/ 누구 한 사람/ 서운하게 한 일 없는지/ 돌이켜 보거라'('모자라는 마음')고 시인은 찬찬히 짚어보며 자문한다. 시인은 그런 마음을 가졌다.

 

문수사 가는 길에 산불이 나서

 

하늘도 활활 삼키는

 

산불이 나서

 

나무는

 

나무는 눈 감고 다비에 들고

 

산새들은

 

산짐승들은 불먹어 떼울음 울며

 

날아가는가 기어가는가

 

천리 밖으로 몸을 사려도

 

눈 하나 꿈쩍 않는 스님들의

 

저 허심한 불구경. ('불구경 - 단풍은커녕' 중에서)

 

이 시는 고창 문수사의 단풍을 빙자하여 '허심'을 그렸다. 단풍을 불에 비유하는 것은 죽은 비유에 가깝다. 그런데 이 시는 '단풍은커녕'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단풍을 구경하러 왔다가 단풍은커녕 불구경만 했다는 의미인데 부제가 이렇게 주제를 압도하는 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불조차 부정된다. 단풍은커녕 불인데 불은커녕 일상이다. 그런데 그 일상도 일상이 아니고 허심이고 무심이고 공이다. 나무는 열반에 든 스님처럼 다비에 들고 새와 짐승들은 삶의 길을 찾는데 스님은 단풍이야 들건 말건, 불이야 나건 말건, 일이야 있건 없건, 세월이야 가건 말건 이미 마음을 다 비웠다. 시인은 이제 이런 해탈의 경지를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시인은 허심의 스님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글쓰기의 첫걸음에서 '글은 사람이다'라는 프랑스의 식물학자 뷔퐁의 언술과 만난다. 뷔퐁은 "지식이나 사실이나 발견 따위는 남에게 빼앗기기 쉽고 더 잘 쓰는 손끝에서 제작될 것이다. 그러나 인격과 밀착된 문장은 그 사람 자체이기 때문에 남이 가져갈 수 없다. 이런 글은 영원히 남는다."고 했다.

 

시인은 '도시 밖 귀빠진 곳에/ 뙈기밭 몇 평을 얻어/ 땀방울을 콕콕 심고 돌아온 날 밤/ 그 밤하늘에선/ 별들이 손뼉을 쳐도 요란하게 쳤다는/ 증거가 두 서넛 있습니다'('현정이의 참깨 밭')라고 읊고 있다. 이 시집은 그렇게 땀방울을 콕콕 심은 현정이의 참깨 밭이다. 글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에는 시인 자신의 사랑과 자비의 인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찌 밤중에 몰래 별들만 손뼉을 치겠는가.

 

/오하근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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