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 학생 함께 어우러져 안식처 역할 / 지역사회 다양한 행사 참여·재능 기부 계획도
처음 악기를 잡았을 때의 그 차가운 감촉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낯선 것은 둘째치고 배에 아무리 힘을 주고 불어도 소리는 밖이 아닌 안에서만 맴돌았다.
'그만둘까'하는 생각이 든 순간,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선생님과 친구의 말에 자투리시간을 들여 악기와 씨름한 끝에 이제 조금은 소리다운 소리를 낼 줄 안다.
친구, 후배들과 함께 만들어 낸 아름다운 하모니가 교실 밖을 넘어 울려퍼질 때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된 것은 '덤'이다.
4일 오전 전주남중학교 음악실.
'미라클'이란 이름의 이 학교 윈드오케스트라 단원 40명이 연습에 한창이다.
저마다 맡은 파트의 관악기에 소리를 내보는 통에 교실 안은 불협화음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단원들의 표정은 그 어느 음악가 못지 않게 진지한 표정이다.
지난해 정부 및 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처음 오케스트라단이 만들어지면서 단원들은 매주 두 번(2시간) 모여 연습을 한다. 여름 방학 동안에도 따로 모여 소리를 내보고 맞춰보는 등 열성적으로 임하고 있다.
하지만 미라클은 훌륭한 연주를 위해 연습하는 것이 아니다.
미라클은 스스로를 사춘기라고 부르는 이 아이들의 억눌린 마음을 푸는 해방구이자, 안식처이다. 즉 힐링(치유)의 공간이다. 또한 왕따 등 학교폭력 피해학생도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면서 얼굴이 밝아졌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공부에도 적용해 학업성적도 덩달아 좋아진 단원도 많이 생겼다.
최무림 지도교사(36·여)는 "감수성이 예민해 상처받기 쉬운 아이들의 정서를 순화해 삶의 여유로움을 찾게 하는 데는 음악만한 것이 없다"며 "아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알아가는 모습에서 보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음악실을 찾는다는 김동흔 군(2년·트럼펫)은 "내기 힘들었던 높은 음을 낼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며 "학교 생활 중 가장 크게 맛본 성취감"이라고 말했다.
김 군은 또, "배우고 익히는 것도 즐겁지만 여러 친구들이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최다연 양(3년·플루트)은 "친구와 다퉈서 마음이 좋지 않거나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었을 때, 합주를 하면 마음이 풀린다"며 "꾸준히 연습해서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미라클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미라클은 지난해 9월 전북 중등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한 데 이어 올해 졸업식에서도 공연을 펼쳐 재학생 및 교직원, 학부모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의 다양한 행사에도 참여, 재능기부를 통해 함께 나누는 화음을 실천할 계획이다.
아이들 내부에서 일어난 긍정적 변화에 만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이들과 음악을 통해 호흡하고 싶기 때문이다.
미라클의 기적은 단원들의 밝아진 얼굴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앞으로 이들이 나아갈 새로운 길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단원들은 굳게 믿고 있다.
최 교사는 "단원들이 외면의 소리를 내기 보다 내면의 맑고 깨끗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우리가 이뤄낸 작은 기적을 선보일 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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