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배 사이, 결혼 골인...수입 적어도 현재 삶 만족 / 예술인 복지정책 아쉬워, 지역연극에 관심·사랑을 / 연극학교 세우겠단 아내, 남편은 오늘도 행복한 외조
전북일보가 다시 문화전문시민기자단을 꾸려 전북문화예술의 가려운 곳을 긁어드립니다. 문화예술 기획자·방송작가·문화예술 현장 활동가들로 구성된 문화시민기자단은 도내 시군 곳곳에 문화예술의 숨은 보배를 찾아 지역문화의 희망을 틔우는 작업으로 진행됩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역문화를 살찌우는 사람과 단체, 공간들의 이야기로 독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쾌한 부부의 연극 이야기
연극은 우리 인생의 작은 축소판이라 했던가!
배우는 노래하며 춤추고 조명은 배우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 무대에는 웃음이 퍼지고, 눈물이 흐르고, 사랑을 나눈다. 10대 때 무대를 동경했던 그 시절의 울렁임이 잠시 추억에 잠기게 한다.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전라북도 연극. 전국 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5번씩 수상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전성기를 누렸던 그 시절은 이제는 빛바랜 옛 영광이 되어 버렸다. 지역에서 예술은 늘 배고프고 힘들다. 연극은 더 춥고 배고프다. 그러나 이런 고난의 길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연극인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전라북도 연극의 미래를 연극인 부부에게서 발견한다. 연극 배우 이도현(47), 이병옥(41) 부부. 연극계 선후배로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연극으로 밥 먹고 사는 이들 부부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연극 ‘가족’으로 만나 ‘진짜 가족’이 되다
어느 나른한 오후. 숏 커트 머리에 시원한 웃음소리, 화장기 없는 모습. 털털하고 건강한 미소년을 연상케 하는 씩씩한 아내 이도현씨(47)를 만났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차 한잔을 나눌 무렵, 아이를 안은 남편이 등장. 9개월된 아들 오승이를 가슴에 안고, 기저귀 가방을 들고 등장한 남편 이병옥씨(41).
군복 스타일 바지에 티셔츠. 너무나 편해 보이는 스타일에서 그의 성격을 엿본다. 자리에 앉아 인터뷰를 하면서도 아들의 간식을 챙기고 안고, 달래고, 육아를 책임지는 남편의 자연스런 모습에 살짝 감동을 느끼며, 연극 무대에서 만나 결혼까지 골인한 두 사람의 달달한 러브 스토리.
연극계 선배인 아내 도현씨는 1987년 연극을 시작했다. 극단 ‘토지’에서 활동을 하며, 그간‘길 위에 서다’ ‘눈 먼 아버지에게 길을 묻다’ ‘경로당 폰팅 사건’ 등의 작품 활동을 해 왔고, 소극장 ‘아르케’ 대표이자, 극단 ‘작은 소리와 동작’의 대표이다. 남편 이병옥씨는 현재 전주시립극단의 단원으로 2003년부터 연극을 했다. ‘창작극회’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 참여했다가 전주시립극단 시험을 한 번에 합격한 실력파 배우다. ‘남자 충동’ ‘하얀 앵두’ ‘햄릿’ 등의 대표작이 있다.
두 사람은 2006년 연극 ‘가족’에 어머니와 아들로 출연하며 처음 만났다. 그리고 만나지 6개월만에 결혼에 골인하는 초스피드 연애를 한다. 어찌된 일인지 두 사람은 첫인상을 그리 좋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무서운 선배, 버릇없는 후배. 공연 후 쫑파티에서 지금의 아내의 모습에서 후광이 비쳐 반했다는 남편의 고백. “물고기 한 마리 키워 보실래요?” 남편은 물고기자리, 아내는 물병자리. 프러포즈 또한 배우답게 이색적으로 전주시립극단의 공연 무대에서 생중계로 진행돼 배우와 관객들 앞에서 펼쳐졌다고 한다.
결혼 7년차 부부. 남편은 살림꾼. 아내는 자유로운 영혼.
“결혼 전에 모악산에 갔는데, 발 마시지를 해 주더라구요. 자상한 남자에요. 결혼 후에도 달라진 게 없어요. 살림도 육아도 남편이 다 알아서 하는 자상한 남편이에요. 저는 결혼 전과 후가 달라진 게 없어요. 여전히 나는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요.”
“결혼 후에 저는 주부 우울증, 주부 습진에 시달리고 있어요. 적금 들어야지, 살림해야지, 애 키워야지. 흰머리가 늘었다고 주변에서 얘기해요. 아내는 저랑 결혼 잘 한 거지요.”
“그래도 우리 행복하죠 오승이 아빠?”
“그럼요 선배님 행복하지요. 살림에 취미 있고 잘하는 제가 당연히 해야죠. 제가 외조를 잘 하니까, 아내가 밖에서 기죽지 않고 일을 하죠.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모두 만족해요.”
“우리 남편 최고.”
함박 웃음이 떠나지 않는 부부. 이들 부부에게 결혼 6년만에 새 가족이 생겼다. 작년 가을 아들 오승이를 낳고 가족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고, 무엇보다 4대 독자인 남편이기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 아내.
△가난한 연극인으로 살아가는 법
두 사람은 욕심이 없다. ‘적게 먹고 적게 쓰자’가 이들 부부의 생활 철학. 연극을 하면서 저절로 얻은 경제 관념. 연극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삶을 꾸려가야 하지만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립극단에서 고정 월급을 받는 남편의 수입으로 살림을 꾸려 갈 수 있다. 적지만 남편은 아버님 칠순 적금, 아이 돌 잔치 적금, 여름 휴가 적금 등 꽤 규모 있게 살림을 잘 한다.
“그래도 우리는 상황이 나은 편이에요. 지역에 젊은 배우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데, 재능 있는 배우들은 다 서울로 가고 고향을 지키는 배우들은 힘이 드는 이유. 다 먹고 살기 힘들어 지기 때문이겠죠.”
그러면서 예술인들에 대한 복지 정책을 언급한다. “연극인들이 공연 수입만으로 생계를 꾸려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연극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부업을 해야 하는 투잡을 뛰는 분들이 많습니다. 연극뿐만 아니라 예술인들에 대한 복지 정책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는 않네요. 적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있다면 연극인들이 무대를 떠나지 않고 버틸 수도 있을 텐데요.”
현재 전북에는 19개의 극단이 있다. 전국 연극제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대통령상을 받았던 전북 연극. 전성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답답하기만 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역 극단들이 창작극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지만, 완성도를 높인 화제작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적으로 전주 위주로 편중되어 있는 것도 문제에요. 군산, 익산, 남원 등 지역에 배우들이 고루 활동을 해야 연극이 발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특히 지역민들이 연극을 사랑하고 봐주셔야 하는데, 지역 연극을 외면하는 게 무엇보다 슬프죠.”
“특히 지역에 작가 구하기가 힘듭니다. 창작물은 검증이 쉽지 않고, 검증된 작품은 사와야 하는데 비싸고, 초연 작품이 지속적으로 나와 줘야 전북 연극이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지역 작가들이 없습니다. 지역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키워주고 밀어줘야 지역색을 가진 지역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많이 생산되는 거 아니겠어요?”
△한 곳을 바라보는 부부
연극 무대가 인생의 전부인 두 사람이 만나서, 연극 같은 결혼을 하고, 연극처럼 자유롭게 살고 있다. 남편 이병옥씨의 꿈은 소박하다. 연극 무대에서 은퇴한 후에는 시골에 가서 작은 텃밭을 일구며 주민들에게 풍물, 염색, 연극을 가르치며, 아들 오승이와 살고 있으면 바쁜 아내가 가끔씩 들러 주는 거란다.
남편의 말처럼 아내는 바쁘다.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아내는 50살에 연극학교를 세우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30세 이전에 극단을 창단하고 40대에 소극장을 마련한 아내이니, 연극학교도 분명히 세울 거라는 남편의 믿음이 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열심히 외조하고 싶다.
이도현, 이병옥 부부. 이들 부부는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 서는 꿈을 꾼다. 그래서 오늘도 달팽이처럼 한걸음 한걸음 인생을 더디게 둘러보고 사뿐 사뿐 걸음을 내디디며 연극 무대에서 광대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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