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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인생 40여년…이 시대 춤꾼 계현순 "자연스러운 몸짓이 최고의 춤, 관객에게 희로애락 전해줘야"

무연고 남원에 '무무헌' 보금자리, 제2인생 시작 / "소리와 함께 하는 무용으로 객석과 소통하고 파"

   
▲ 남원 식련리에 있는 무용가 계현순 씨의 새 보금자리‘무무헌’의 내부 모습.
 

남원시내에서 장수 방향으로 19번 국도를 따라 15분 가량을 가다보면 식련리라는 곳이 나온다. 마을 어귀로 접어들면 보이는 아름드리 큰 나무를 지나치자마자 새로 다듬어진 길가에 그리 크지도 심하게 아름답지도 않은 집, 무무헌(無舞軒)이 있다. 백구 한 마리가 반기는 이곳은 무용가 계현순 씨(58)의 연습실이자 보금자리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성장·생활한 그가 남원에 터를 잡은 이유는 자연이 주는 여유 때문이다. 그는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느긋하고 넉넉해진 모습이었다.

 

무무헌은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 원장에게서 얻은 이름이다. 그곳에는 그가 진정 원하는 춤을 이 공간에서 이루고 싶은 욕망이 배어 있다.

 

그는 “서울에서는 36시간을 살아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18시간만 살아도 매우 느긋하다”며 “어디에서도 이만한 공간을 못 구한다”고 무무헌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남원과의 인연은 지난 1998년 국립민속국악원에 안무자로 발령받으면서 시작했다. 서울시립무용단에서 이력을 쌓고, 국립국악원 무용단을 거쳐 온 곳이었다. 2009년에 서울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올라갔다가 2011년에 임기를 마치면서 다시 남원으로 내려왔다.

 

“날씨에 따라 상추, 고추, 꽃이 흙에서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스스로 그러하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다 갖춰진 무대에서 대접 받으면서 움직이는 춤이 아닌 정말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춤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어느 날 촌부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는 “지게를 진 할아버지의 아침 인사가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춤사위로 다가오는 감동을 받아 김소희 명창의 8시간 완창을 편집해서 ‘사랑의 메아리’ 라는 무용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고 했다. 할머니 역할을 하다 농부가에 맞춰 그 때 봤던 할아버지의 몸짓을 표현했던 작품이 가장 아름다운 몸짓이었다고 들려주었다.

   
▲ 남원에 둥지를 튼 무용가 계현순 씨가 무무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평소 단원들에게 “짓밟는 게 아닌 자기 발전을 위한 경쟁을 해라, 물도 채워서 넘쳐 봐야지 비우는 것도 안다”라고 하던 그가 현재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후회하는 점은 여유롭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다.

 

그는 “단체에 있을 때 왜 사람들을 그렇게 다그쳤을까, 좀 더 느긋하게 할 것”이라며 회상했다.

 

“춤이 종교였고 남편이었다”는 그의 춤꾼 인생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유독 춤을 싫어해 반대하시던 아버지 몰래 시작했다. 대입 때까지 어머니만 아는 비밀로 무용을 했다. 이후 그는 서울예술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시립무용단에 입단했다.

 

“무용단 입단으로 좋은 운은 이미 썼으니 현실적으로 큰 단점인, 남보다 덜한 체격 조건과 떨어지는 외모를 보완해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연습이었다”며 조용한 무무헌을 웃음소리로 가득 채웠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하는 꼴을 보면 환장할 일이었지만 그 끝에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연습뿐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렇다보니 그에게 연습은 곧 생활이었다. 제자들에게 항상 “시집살이도, 부부싸움도, 애 키우는 것도, 먹고 자고 싸는 것, 즉 모든 것이 춤이다”고 할 만큼 그의 전부였다.

 

퇴직 뒤에도 마음 속에서 계속 춤을 추고 있다는 그의 마지막 소원은 소리와 함께 하는 무용이다. 자신이 음치, 박치라고 밝히면서도 “다듬어 지지 않은 소리가 모여 객석과 함께 하는 소리로 나만의 무대를 이어가고 싶다”며 “머리를 빡빡 밀고 승무도 하고 싶다”고 했다.

   
▲ 김정준 전주전통문화관 공연팀장

그는 춤을 통해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숙원 사업이다.

“춤이란 이런 거 같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떤지요’라고 객석에 질문을 던집니다. 누구든지 단 한 사람에게라도 희로애락의 감정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춤을 추면서 살았던 인생의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무대에 올라 살풀이를 추면서 떨어진 수건을 줍기 위해 엎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최후의 순간을 맞는 꿈을 꾼다는 말에서 춤꾼으로서 그의 열정이 얼마나 큰 지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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