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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쟁이에 '매달린' 곶감

욕망의 짐 내려놓고 족함을 아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어

▲ 언론인

해마다 이 때 쯤이면 또 한 해를 보내는 송년(送年) 감상이 쏟아진다. 특히 늙은이들의 센티멘탈리즘은 때로 읽는 이들의 코 끝을 시큰거리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든 어른들이 세월이 빠르고 인생이 덧없다는 푸념을 해도 유심히 새겨 들어야 한다. 나이가 든게 아쉬워서 그런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인생이 그리 기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중국 고전(古典)에 ‘인생이란 백마가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말이 있다. 젊어서는 인생이 꽤 길게 느껴지지만 나이가 들면 화살처럼 달리는 백마를 문틈으로 얼핏 본 것처럼 인생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나이를 먹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월이 기다려줄 거라는 착각에 쉽게 빠지곤 한다. 세월을 붙잡고 더디게 가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고 바로 즐겁게 사는 것이 세월을 더디게 가게하는 묘책이다.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고 할지 몰라도 김홍신 작가의 소설 <인생사용 설명서> 는 바로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 두 번 살 수 없다. 두 번 살 수만 있다면 한번은 연습처럼 살겠지만 한 번밖에 살 수 없으니 살아 있는 동안은 참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나 자신이 소중하기에 오늘이 생애 최고의 날인 듯 최선을 다해 살고 지금이 생애 최고의 순간인듯 행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일까. ‘제따와나 선원(禪院)’ 일묵 스님의 칼럼 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건 돈을 많이 소유하고, 좋은 집과 차(車)를 가지고, 마음에 드는 이성과 데이트하고,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등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행복은 본질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함으로써 생긴다. 그러나 이는 적당하면 문제가 없지만 집착하면 욕망이 된다. 욕망이 되면 행복을 얻더라도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욕망은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욕망의 항아리는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욕망의 노예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수많은 짐을 지고 산을 오른 사람이 짐을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지는 것처럼 욕망의 짐을 내려놓을수록 마음은 안정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지혜의 힘으로 욕망의 중독성을 이해하고 욕망에서 벗어난 삶을 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족함을 모르는 자는 아무리 부유해도 가난하고(不知足者 雖富而貧) 족함을 아는 자는 아무리 가난해도 부유하다(知足之人 雖貧而富)’고. 그러면서 ‘나는 오직 족함을 알 뿐이다(吾唯知足)’고 설파했다. 행복이 무엇인가. 욕망을 억제하고 겸손하며 남을 존중하는 세상, 자신과 남을 차별없이 사랑하는 세상, 적은 것에 만족하는 세상, 다툼이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늙어서 원숙해지는 것이 노숙(老熟)이요 늙어서 풍성해지는 것이 노성(老成)이요 늙어서 무르익는 것이 노련(老鍊)이요 늙어서도 기운이 왕성한 것이 노익장(老益壯)이다. 이것이 바로 늙음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러나 험난한 세파를 헤쳐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자신도 모르게 추하게 늙어가기도 한다. 기력은 쇠약하고 정신은 몽롱해지고 얼굴은 생기를 잃고 마음은 빈약해진다. 그것은 곧 노추(老醜)가 되는 것이다. ‘젊은이가 가지고 있고 마음의 짐은 남에게 나눠주면 그만큼 가벼워 지지만 늙은이는 아무리 그 슬픔을 나눠주어도 여전히 똑같은 슬픔이 남아있는 법’이라고 작가 오 헨리(O. Henry)는 서글퍼 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느 것 하나 따뜻하게 우리 주변을 감싸주는 것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세밑이다. 그러니 새삼 ‘노년이라 다 빼 먹었기 때문에 없어진 맛의 기억만 남아있는 곶감같은 것이고 겨우 꼬쟁이 끝에 남은 한두 개로 야금야금 과거를 되살리면서 연명해가는 신세’(소설 <오래된 정원> )라고 탄식한 작가 황석영의 넋두리에 수긍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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