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변산 모항에 살고 있는 시인 박형진은 농사를 짓는다. 그는 시인이 되기 훨씬 오래전부터 농사꾼이었다. 모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농사를 지으며 농민운동을 해왔던 그는 1992년 <창작과 비평> 봄 호에 ‘봄편지’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과 산문집, 어린이책까지 그동안 펴낸 책만도 여러 권. 그만큼 농사지으며 일궈내는 창작 활동의 폭이 넓고 깊다. 창작과>
그가 최근 새 책을 냈다.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 다. 농사짓는 일에 쓰이는 연장 88가지를 다룬 이 책은 다양한 종류나 시인의 눈으로 잡아낸 농기구의 원형과 그 이면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농사짓는>
농부에게 연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는 연장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농부의 신체, 그 연장(延長)과 같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대로 거슬러 올라가 원시에 가까울수록 도구는 신체의 연장처럼 모습을 띠는데, 이를테면 원시시대로부터 몇 만 년이 지난 지금에도 ‘호미’나 ‘괭이’가 원시의 모습 그대로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의 이야기로 알게 된 연장의 쓰임과 종류는 단순하지 않을 뿐 더러 품새와 의미가 특별하다. 남자들이 논에서 쓰는 논 호미와 밭 호미가 따로 있고, 지역에 따라 그 모양새가 달라진다는 것이나 서로에게 존재의 이유가 되는 낫과 숫돌의 관계는 우리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또 다른 통로가 된다.
나래와 번지, 깍지와 토시, 부뚜, 섬과 씨 오쟁이, 멱서리, 풍구, 구유와 여물바가지 등 여든여덟 가지 연장은 이름도 예쁘고 어느 것 하나도 쓰임이 허술한 예가 없거니와 그 과학적 구조와 원리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농사 도구로부터 ‘도구로서 기능하며 거친 논밭을 일구는 것을 넘어 마을을 일구고 한 사회와 그 사회를 떠받치는 규범, 즉 문화를 일구어낼 수 있었던 가치’를 발견한 그는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현대의 농기구들이 갖는 소모품으로서의 속성을 주목한다.
안타깝게도 쓰임은 살아있으나 편리성만을 추구하는 현대에서 이들 농사 도구의 존재는 미약하다. 수많은 농기구들이 이미 현장에서 사라져버린 지금, 그는 왜 그 연장들을 다시 불러내 기록했는가.
답이 책 안에 있다. ‘문학이며 역사이며 철학일 수밖에 없는 이글을 내 아들딸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농촌에서 농사짓고 있는 젊은 농군들과 귀농인들이 읽는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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