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화문 광장을 무척 좋아한다. 빌딩 숲과 번잡한 도로 한 가운데 아무렇게나 걸어 다녀도 괜찮은 그 공간은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공강 때면 학교 후문에서 버스를 타고 그곳에 가곤 했다. 광장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들고 나온 피켓 문구에도 눈길이 갔다. 피켓에 적힌 내용에 공감하기도 했고, 적힌 내용이 어려워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새삼스레 알게 됐다. 그 곳에 갈 때마다 온갖 사람들이 나와 아무 말이나 내뱉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유롭고 탁 트인 느낌이 좋았다.
광화문광장에 얽힌 경험
그런 광화문 광장이 내게 조금 더 특별해진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 쪽으로 가려고 하자 경찰이 이를 미신고 행진으로 보고 길을 완전히 막아 통행할 수 없도록 해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 와중에 한 대학생이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되는 일이 있었다. 내가 바로 그 대학생을 변론하게 된 것이었다.
갓 스물을 넘긴 그 청년은 면담 내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청년이 참가한 집회는 마무리가 된 상태였고, 행진을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설령 신고범위를 일탈하거나 신고하지 않은 집회라 하더라도 평화로운 것이라면 헌법상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게다가 그곳은 평범한 인도 위였다.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해지려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 이를 예방하기 위해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하고, 그 행위로 인해 사람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긴급한 경우에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으나(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 당시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그저 길을 지나려던 것뿐이었다. 이들이 신고범위를 일탈한 혹은 신고하지 않은 행진을 했다 하더라도 평화를 깨뜨린 일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1심에서 벌금형이 선고됐고, 깊은 상심에 빠진 나는 틈만 나면 그곳에 갔다. 길을 걸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청년은 집회 참가자라는 이유만으로 통행을 제지당했고, 이에 항의하다 처벌 받을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리고 집회 참가자에게 가해지는 일련의 제재를 지켜보며, 이대로라면 나도 집회에 참가했다가 예상치 못하게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는 분명 집회·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이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법률적인 주장으로 다시 다듬었다. 2심에서 1심 유죄 판결이 뒤집혔고, 1년 정도 대법원에서의 심리 기간을 거쳐 청년은 무죄 확정 판결을 받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판결 내용이 짧게 보도 되었고 그 내용을 다소 오해한 사람들이 내게 악플을 달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정한 한계를 넘지 않는 수준이라면, 그런 댓글마저도 자유롭게 달 수 있는 세상이 계속될 수 있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합의한 민주주의
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서의 평화가 무결점의 상태일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이야기하게 되면, 조금은 시끄럽고 어쩌면 누군가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자유롭게 모여서 말할 권리를 계속 가지기 위해서라면, 다소의 소란스러움 쯤은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합의한 민주주의의 내용이고, 헌법의 정신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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