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자 아직도 올해의 여러 날이 남았건만 우리 모두는 벌써 한해 마무리와 새해 맞이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2016년 12월 다이어리의 빈칸을 미처 채우지 않은 채 필자도 2017년 새 다이어리에 올해의 12월 칸을 적어 나가고 있다. 불안한 20대 청춘들이 그렇듯 본인 또한 희망적이고 도전적이 한해를 꿈꾸기보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들에 대한 안도와 평안을 찾는 한 해에 만족을 했더랬다.
억지로 만족하던 삶
그냥, 그런대로
나는 원래 불안하고 소위 말하는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이니, 외부적 요인들이 흔들리거나 사회적 질서가 어긋나도 별 대수로운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미래는 꿈꾸는 것이라기보다 원래 불확실한 것이라 그런대로, 안정적인 직장은 내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 이미 포화상태인 그런대로, 예술가는 가난한 것이라고 하니 부족한 그런대로. 나는 ‘억지로’ 만족하는 삶을 꾸려나갔다. 그것은 비단 나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내 주위의 친구들이 그랬고, 20대의 청춘들이 그랬으며, 2016년을 살아가는 나의 이웃들이 그러했다. 방관하는 삶을 자처했고, 책임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꺼려했다. 그러니 뉴스를 보려하지 않았고,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해 사회나, 이웃을 돌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내가 뉴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간이 역행을 한 것 아니냐, 어떻게 지금 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의아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뉴스가 굉장히 자극적으로 연출된 드라마를 보는 착각까지 불러일으켰다. 한 나라를 이끄는 소위 어른이라 불리는 정치인, 기업 총수들은 조사를 하는건지, 농담을 하는건지 모를 정도였다. 개그show보다도 웃긴 티비show가 청문회라는 포장을 하고 전파를 탔다. 평소엔 세상 모든 이치를 알던 사람들이 그저 ‘잘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만 연신 되풀이했다.
응징으로써의 행동이 아닌 희망으로써의 미래
시민의 아픔 앞에 국가와 국민을 말하던 ‘어른들’,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린 사회. 우리는 어쩌면 훨씬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순실의 시대라고 표현되고 있는 이 사회는, 사실은 상실의 시대 안에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만 그득한 느낌이다.
야만의 시대서 희망을 찾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누군가 국민은 현재 분노하는 마음이니 감정이란 것은 시간이 흐르면 사그라들고, 무뎌지기 마련이니 잠시 기다리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분노라는 단어로 국한 지어지는 감정 그 이상이다. 잘잘못을 따지고 그것에 응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단순한 사고를 뛰어 넘어, 퇴보하는 사회에 대한 경계이며,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절절한 열망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요지경 세상. 모순된 사회 앞에 우리는 조금 더 우리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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