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국악작곡가로 활동해오며 다양한 주제를 음악적으로 다루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기던 가곡에 뿌리를 둔 ‘경풍년(慶豊年)’을 소재로 하여 작곡되어진 ‘대금과 아쟁을 위한 이중주 격양가(擊壤歌)’를 쓰게 된 작곡 노트의 일부분을 잠시 칼럼에 인용해 본다.
백성들이 걱정 없이 즐겁게 사는 나라
동양권에서 가장 이상적인 시대를 말할 때 요순시대를 빗대곤 한다. 요순시대에는 태평성대가 끊이지 않았는데 이때 백성들이 저절로 흥겨워 부른 노래가 바로 ‘격양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풍년이 들어 오곡이 풍성하고 민심이 후한 태평시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는 ‘격양가’의 노래가사는 『세종실록』 권8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일출이작(日出而作) 착정이가(鑿井而歌) 경전이식(耕田而食) 제력하유어아재(帝力何有於我哉).”
“해가 뜨면 일하고, 우물 파서 물마시고, 밭을 갈아 밥 먹으니, 임금의 은혜 어찌 우리에게만 있으리오.”
격양가는 중국의 고가로써 전해지는 내용은 이렇다.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었을 때, 과연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자 평민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 넓고 번화한 네거리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이 노래 부르며 놀고 있어 그 노랫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우리 백성들을 살게 하는 것은, 그대의 지극함 아닌 것이 없다,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임금의 법에 따르고 있다.” 그 뜻은 임금님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 백성을 도리에 맞게 인도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법이니 정치니 하는 것을 염두에 두거나 배워 알거나 하지 않아도 자연 임금님의 가르침에 따르게 된다는 것으로, 이 노래를 ‘강구가무(康衢歌舞)’라고도 한다.
임금은 다시 발길을 옮겼다.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 노래의 요체는 정치의 고마움을 알게 하는 정치보다는 그것을 전혀 느끼기조차 못하게 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것으로, 이 노래가 ‘격양가’이다. 노래한 노인이 했다는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는 행위가 곧 ‘함포고복(含哺鼓腹)’이다. 이는 장자가 다스림의 최고 경지라 한 것으로 ‘백성들이 먹을 것이 풍족하여 아무런 걱정 없이 즐겁게 지내고 있음’을 뜻한다.
격앙가 부르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지금은 어느 모로 보나 이 나라 국민들이 배 두드리며 ‘격양가’를 부를 형편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 나라 위정자들이 정치를 아주 잘 한다고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어느 구석에서든 불만이 있을 수 있으며 국민은 그 불만을 표현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것이 예술적 표현에서든 비폭력 시위를 통해서든 말이다. 촛불 집회를 벌이고, 예술가들이 곳곳에서 시국을 대변하는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것을 두고 억압할 목적의 수단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매 정권마다 문화예술에 대해 편가르기식 지원을 하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문화를 요구하는 시대를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부디 이 땅에 살고 있는 국민 모두가 땅을 치고 배를 두드리며 ‘격양가’를 노래하는 그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우리는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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