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靑春)’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이다.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를 뜻하기도 한다. 그 시기의 나는 진정 ‘청춘’이었나? 예고를 나와 미대를 졸업한 나는 예술적 성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비교적 다양한 일들을 하며 지내왔다. 스물한 살, 연예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간 것이 시작이었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사람들과 상황 속에서 첫 사회생활의 무서움을 느꼈다. 그 뒤로 다양한 곳에서 성인과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일은 물론, 쇼핑몰 MD, 모델, 디자이너, 회사원, 벽화를 그리기도 했고 백수로 지내기도 했다.
청춘, 10대 후반·20대 뜻하지만
그렇게 20대를 보냈다. 짧은 시간동안 이렇게 다양한 일을 했다는 것은 한 가지 일을 긴 시간동안 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펙이라고 할 만한 것 하나 없던 나는 뭐하나 끈기 있게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운 사람이었다.
내 몸과 마음이 한없이 작아 보여 더 이상 작아질 수도 없을 만큼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질 시기에 공연을 하나 보게 된다. ‘드로잉쇼’라고 하는 그 공연은 무대에서 다양한 기법과 효과를 주며 빠른 시간 안에 그림을 그려내는 흥미로운 그림공연 이었다.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작정 그 극단에 연락을 해서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간절함이 통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곳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내 나이 29살 때였다.
그 때는 몰랐다. 마냥 새로운 꿈에 부풀어 들어간 그 곳이 상상 이상으로 녹록치 않은 곳이란 것을.
연극의 ‘연’자는 커녕 걸음걸이조차 문제였던 나는 그 극단의 천덕꾸러기이자 총체적 난국이었다. 게다가 단체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던지라 배우들 속에서 섞이는 법을 몰랐고 그렇게 매일을 하루가 한 달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그곳에서 나의 마지막 20대 청춘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끈기 없이 쉽게 포기하던 내가, 그 전 같으면 진작에 때려 쳤을 그 일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내가 그토록 원해서 하게 된 그 일조차 버티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평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낙오자가 될 것만 같은 불안함과 절박함.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루도 마음 편한 적 없었고 몸과 마음을 다치기도 했지만 나를 가장 성장시킨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아서가 아니었다. 자의만으로 나를 이긴 최초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을 계기로 조금씩 나를 넘어서는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스스로를 이겨먹지 못해 후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다만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보이던 대상을 한번 넘으니 더 이상 막막하지만은 않은 것처럼 마냥 ‘나는 안 돼’라고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고 작은 고비들을 넘기며 성취의 즐거움을 깨닫게 됐다.
봄마다 푸른 싹 틔울 수 있다면 청춘
까맣게 타들어가 더는 태울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숯이 다시 한 번 빨갛게 불타오르고 그 불꽃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끊임없이 부활할 것이다. 이미 꿈과 의지만으로 먹고살 수밖에 없는 삶을 선택해 버렸으니 그 숯이 재가 되지 않고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즐기면 그만이다. 나의 청춘은 20대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청춘이 뭐 별건가. 내 속의 나무가 말라 죽지 않고 매년 봄마다 푸른 새싹을 틔울 수 있으면 그게 언제까지고 청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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