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강을 찾아 예술 영감을 얻어
매화 향기를 따라 봄날의 섬진강을 찾아가 본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조영남의 ‘화개장터’라는 아버지 시절부터 이어져온 이 익숙한 노래 덕분에 나는 섬진강의 존재가 나에게 항상 친근하면서도 미지의 그 무엇이었다. 진안에 발원지를 두고 있는 이 소박한 강으로 인해 누군가는 시인이 되었고 또 누군가는 화가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그저 개발해야 될 미 개척지의 한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이 강에서 사회를 보았고 인생을 보았다. 강과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랐고 평생을 지금과 같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길 원한다. 전통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깊은 영감의 흔적들을 찾기를 바라며 무턱대고 내려온 이곳, 그렇다면 그 자연속 삶은 어떤 것일까?
상선약수(上善若水).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물처럼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법이라는 이야기다. 노자의 도덕경 8장에 나오는 이 구절에서 노자는 세상을 물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남과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다는 부쟁(不爭)의 철학이다. 언뜻 보면 소극적인 삶의 방식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은 만물을 길러주고 키워주지만 자신의 공을 남과 다투려 하지 않는다.’ 물은 내가 길러주었다고 일일이 말하지 않는다. 둘째,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겸손의 철학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임하기에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이 뻔한 이치가 이다지도 어려워 내 공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존재를 부각하려고 난리고 권력을 이용해 아랫사람을 하인 부리듯 주무른다.
‘자연(自然)스럽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1.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2.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 3.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
자연은 그냥 자연스럽게 두면 된다. 순리에 맞게 그 모습 그대로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애써 힘들이지 않고 가만 두면 되는 것이다. 무상히 흘러가는 강물의 흐름 속에서 조상들은 이 깨달음을 얻었고, 나는 그 섬진강을 몇 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서른세 살에 여전히 붓을 잡고 있는 나에게도 예술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비우는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다. 자기 자신의 욕심이 들어가는 순간 예술의 흔적들은 사라지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심만이 작품을 가득 메우게 된다. 내가 서울 한 복판에서 전주행 티켓을 끊었을 때, 사람들은 내가 주류에서 멀어진다고 많은 걱정을 했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나를 비워내는 과정들이 필요했다.
수천 년 간 여전히 꿋꿋하게 서 있는 위대한 자연 경관들을 홀로 여행하면서 나는 상선약수와 같은 삶의 소중함을 배워간다.
자연과 더불어 더 단단한 예술가로
이제 나는 다시 나를 비우려 한다. 종이를 다시 펼쳐 본다. 나의 눈에 비친 섬진강의 아름다운 자태를 따라 그리면서 나는 순리에 맞고 당연한 그 자연의 긴 호흡에 맞춰 간다. 자연과 더불어 나는 더 단단한 예술가가 되어갈 것이다. 그렇게 나를 물처럼 채워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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