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역시나 두 달 만에 집에 올라갔다. 연락도 없이 갑작스레 올라와놓고 엄마 얼굴 보자마자 맛있는 거 해달라는 철없는 딸내미의 주문에 엄마는 분주하게 장을 봐 오신다. 고작 2박 3일 머무는데 장을 두 번 보신다. 두 번째 장바구니는 고스란히 딸내미 챙겨 보낼 찬거리가 된다.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엄마의 마음
무겁다고, 과일은 가서 사먹어도 된다며 챙기지 마시라는 말에도 이게 달고 맛있다며 한보따리 가득 우겨넣으신다. 이따 전주에 내려가면 비가 올 거라며 우산까지 내미시는데 그놈의 우산 챙기기는 어쩜 이리도 항상 귀찮은 건지. 마다하는 걸 엘레베이터 앞까지 나오셔서 챙겨가라는 통에 하릴없이 받아오며 투덜거린다.
그렇게 전주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순간 싫은 소리 들어도 내 새끼 비 맞게 하기 싫은 어미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툭 가라앉는다. 유리창에 새겨지는 빗자국과 함께 내 볼에 눈물길이 생기고 있었다.
난 여느 딸내미들처럼 애교 많고 살가운 딸이 아니었다. 오히려 말수 적고 혼자 있기 좋아하는 무뚝뚝한 편이었다. 매번 어떤 주제로 대화를 시작 하던지 간에 끝은 항상 비슷한 엄마의 잔소리로 마무리 되는 것이 싫었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층 한층 벽을 쌓아갔고 그 벽으로 인해 끝없는 대립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난 그렇게 일정부분이 결핍된 채로 성장했고 그 결핍은 지금까지도 부모님에게 자주 연락드리는 것조차 익숙지 않은 나를 만들었다.
마냥 듣기 싫었던 엄마의 잔소리가 당신만의 대화 방식이란 걸 이제는 안다. 엄마 또한 나의 그것과 닮은 결핍으로 인해 굳어진 연약한 사람이었으리라. 하나라도 더 챙겨 보내려는 어미의 몸짓으로 이미 나에게 따뜻한 대화를 건네고 계셨다.
항상 한결같이 나를 보듬어주시는 아빠. 말없이 내려오고 나면 저녁쯤 치킨 사왔는데 벌써 갔냐며 전화해서 아쉬워하시는, 언제나 나에게 그늘을 제공해주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같은 존재. 전주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 힘들면 그냥 정리하고 올라오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제 일하며 잘 버티고 있는 딸이 대견해 허허 웃어 보이시는 당신. 무심한 딸보다 항상 먼저 전화하시어 자주 연락 달라고 말씀하시는 그 음성이 애틋해 고운 손수건에 고이 담아 심장 가까운 곳에 보관해놓고 당신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보곤 한다.
부모님을 보며 더 잘 되겠다고 다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가 생기면 내 새끼 때문에 더 힘을 내서 일을 하고 생활을 하게 된다지만 나는 부모님을 보며 내가 더 잘 돼야겠다고 다짐한다.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가 실린 기사와 방송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으시던 그 모습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처음으로 나를 믿고 응원해주신 그 모습이 나의 몸을 움직이게 한다. 아마 지방에 홀로 떨어져 생활 해보지 않았다면 쉽게 알지 못했을 감정이었으리라.
아직도 녹록치 않은 전주생활이지만 지금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이렇게 이야기해본다. 엄마가 싸준 반찬이 맛있어서 힘이 나서 그런지 오늘 일도 잘 풀릴 것 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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