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차가운 현실과 비슷한 모습
‘예술가 신은미’라는 여섯 글자와 ‘돈’과는 놀랍도록 아무 상관이 없었다. 부끄럽지만 서른까지 나는 대학의 감투를 써오다 이제 막 예술가인척 하려던 당신의 백수 딸이었다. 나의 화려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 한결 한결에는 당신의 깊은 주름들이 패여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전주까지 홀로 뛰쳐나온 이유다. 예술가라는 잡기 힘든 꿈도 꿈이지만, 이제는 당신에게 고생의 주름보다 웃음의 주름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뛰쳐나온 처음 만난 예술가의 현실은 차가웠다. 사람들은 내가 그린 그림을 살 때 만 원 짜리 한 장도 쉽게 쓰는 일이 없었다. 월세는 무서웠고, 만만하게 시작했던 현실 예술가의 길은 통장 잔고가 계속 0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다 포기해버리고 싶던 어느 날 밤에 나는 마감을 하려던 나의 가게에서 작은 쥐며느리가 뒤집혀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뭇 분위기가 심각하다. 어쩌다가 몸이 뒤집어진 건지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얼른 휴지로 감싸서 버렸겠지만, 이번에는 자세하게 보고 싶어졌다. 꼭 전주 한복판에서 아등바등 하는 나의 모습 같았다. 온몸에 돋아있는 수많은 다리들과 더듬이가 그대로 드러난 채 발버둥치는 움직임이 신박하기까지 했다. 몸을 둥글게 움츠렸다 피는 반동을 이용해보기도 하고 한쪽 다리들만 움직여서 몸의 중심을 옮겨 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정신없이 움직이다 지쳤는지 이따금씩 미동이 없어질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금방 다시 그 움직임들을 반복한다.
한낱 미물이라고 생각했던,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작은 생명체가 살기위해 꽤 현명하게 몸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수 분 동안 보고 있노라니 성공할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에는 내입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고 어느 순간 진심으로 그 쥐며느리의 뒤집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쉼 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져 결국 내 작은 힘을 보태기로 한다. 나에게는 힘이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한 정도의 손가락 움직임이었지만 그로인해 그 쥐며느리는 생명을 되찾았다. 자유를 얻은 쥐며느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열심히 기어 내 손 옆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마치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듯이. 불과 몇 분 전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그 손이다. 나는 조심스레 종이로 그 녀석을 들어 올려 문밖의 편평한 땅위에 내려주었다. 징그러운 벌레에 불과했던 그 쥐며느리는 나에게 작은 응원가를 보내주고 있었다.
할 수 있는데까지 혼자 힘으로 노력을
누구든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있다. 그럴 때 금방 포기하고 남에게 쉽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할 수 있는데 까지 혼자 힘으로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와 후자 중 누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그로인해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는 과연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왔나. 가장 하찮게 여기던 그 벌레 한마리가 준 감동을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이 느끼도록 행동했던 적이 얼마나 있을까.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 유사시 부모의 방어막 속에 숨어버리는 자라족, 그리고 일할 의지조차 없는 니트족이 매년 늘어가고 있다. 정부제도의 문제를 당당히 외칠 수 있을만큼, 앞서 그대는 노력으로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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