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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취재기자의 1987 관람기

검찰의 역할 지나치게 부각 / 경찰과 달리 아직까지 함구 / 처절한 반성 뒤따를 것 기대

▲ 윤승용 서울시중부기술교육원장

영화 ‘1987’이 68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나도 신정 연휴에 바로 그해에 태어난 딸 등 가족들과 함께 관람했다. 30여 년 전 영화의 배경 현장에 취재기자로 활동했기에 그 시절의 처절한 장면이 되살아나 만감이 교차했다.

 

이 영화의 사회적 의미나 영화적 평가 등에 관해선 이미 많은 언급들이 이어지고 있기에 이 부분에 대한 언급 대신 영화 줄거리에 대한 팩트 체크를 해보려한다. 이 영화는 제작진이 밝혔듯이 ‘다큐멘터리 영화’ 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픽션을 가미한 이른바 ‘팩션’이라 할 수 있다.

 

줄거리는 5공화국 말기의 역사적 사실, 즉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언론 보도→경찰 등 권력기관의 조작 시도→조작·은폐사실 폭로→학생시위 격화→최루탄에 의한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 기둥이다. 영화는 이 일련의 역사적 흐름에 대부분 충실하게 부합하지만 사실관계가 가장 침소봉대되어 아쉬운 대목은 ‘선한 검찰, 악한 경찰’로 묘사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전말이다.

 

영화에 따르면 박처원 당시 치안본부5차장을 비롯한 경찰은 박종철에게 물고문을 가한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이를 은폐·축소 ·조작하려는 사악한 집단으로 묘사된다. 이에 비해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 검찰은 경찰의 고문치사 은폐 시도를 저지하는 정의로운 집단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당시 취재수첩을 토대로 저간의 사정을 종합해보면 경찰이 악랄한 집단으로 묘사된 것은 맞지만 ‘굿 가이’로 등장하는 검찰은 사실이 너무 미화된 측면이 있다.

 

내 취재수첩과 여러 자료 등을 토대로 복기해보면 사실 관계는 이렇다. 영화에서 검찰은 부검 없이 화장해 고문치사를 은폐하려는 경찰을 막고 온갖 회유와 압박에도 부검을 하도록 해 고문치사 사실이 드러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심지어는 하정우가 분한 최환 부장검사는 겁박하는 경찰 고위층에게 대들기도 하고, 만취한 채 상관의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는 등 낭만적 면모까지 보여주는 식으로 제법 멋진 캐릭터로 어필한다.하지만 검찰의 역할은 바로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검찰은 당시 자신들에게 주어진 수사권마저 포기하고 경찰 자체 수사에 맡겨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을 축소·왜곡·조작하도록 방조한 것을 시작으로, 1차수사(1987.1.20.~1.23)나 2차수사(5.20~5.21), 3차수사(5.22~5.29)나 심지어 1년 후의 4차 수사(1988.1. 13~1.15) 등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 경찰의 축소·은폐·조작 기도를 방조하고 협력한 것은 오히려 검찰 수사팀이었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검찰의 역할이 지나치게 부각된 데는 당시의 시대상황 및 이 사건을 토대로 정계진출을 위한 홍보 책을 낸 안상수 당시 서울지검 형사부 검사의 과잉 자가 홍보의 영향이 컸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시해사건(10·26사건) 이후 12·12 쿠데타와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유혈진압으로 집권한 5공화국 ‘군사독재정권’은 체제유지를 위해 과도하게 경찰권력을 확대했다. 특히 광주에서 군을 투입함으로써 엄청난 후유증을 치러야 했던 전두환 등 신군부는 이를 경험 삼아 군에 의한 시위진압 대신 경찰력에 의한 정권유지를 도모했는데, 이 때문에 5공화국에서 경찰은 ‘체제수호의 보루’로서 정권의 총애를 받으며 과다한 권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박종철에 대한 고문치사나 그 이후 검찰을 번롱하며 고문치사를 은폐 조작하려 한 것도 바로 집권층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이 영화와 관련하여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찰은 박 군 고문치사에 대해 여러차례 사과와 유감표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아직까지도 유구무언이라는 점이다. 다만 문무일 검찰총장이 이철성 경찰청장과 함께 이 영화를 본 뒤 “당시 검찰이 했다고 들었던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묘사됐다. 너무 미화하는 거 같아서 부담스러웠다”고 언급한 점을 기화로 이른 시일 내에 처절한 반성이 뒤따를 것을 기대한다.

 

사족:이 영화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두 인물이 전북출신이다. 박군에 대한 물고문 사실을 오연상 의사에게서 밝혀내 보도한 윤상삼 동아일보기자는 남성고, 최환 부장검사는 전주고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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