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호기로워 젊은시절 여행은 더욱 뇌리에 남아
80년대 학창시절의 기차여행은 ‘낭만’의 대표주자였다. 함께한 이가 속 깊은 우정을 나누던 친구이든, 연인이든 여름 방학이 되면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지금처럼 여행이 수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 설렘은 더 컸을 것이다.
얄팍한 주머니 사정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둘기호나 통일호 열차에 오르면 오늘날 KTX의 속도감에 비할 수 없는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었다. 열차가 달려가는 동안 느긋하게 바깥 풍경에 취하기도 하고, 시끌벅적한 기차안의 분위기에 젖어들기도 했다. 옆자리의 누군가가 끌러놓은 보따리에서 삶은 계란을 함께 먹기도 하고, 처음 만나는 어르신들과 대화도 섞어가며 달리던 열차 안 풍경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껏 정겨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청춘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우리 세대와 다르게 언제인가 부터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나 취업준비 등으로 젊음을 만끽할 만한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취업의 높은 벽은 삶에 있어 꼭 필요한 사색과 경험을 위한 시간에 대한 투자를 짓누르고 있다. 잠시 쉬었다 하라고 의자를 내밀어 주고 싶지만, 현실은 내민 손을 잡는다. 그렇게 우리의 아들과 딸들, 이 땅의 청춘들은 메마른 땅에 힘들게 뿌리 내린 풀처럼 불안 불안하여 볼 때마다 가슴을 졸이게 된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우리의 청춘들에게도 온전한 쉼을 주자. 우리의 청춘이 쉼을 통해 청춘의 역경을 이겨내고 힘을 내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고, 우리 모두의 미래가 밝아진다.
일찍 부터 영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후 여행을 떠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떠날 때와 달리, 돌아올 때에 세상 보는 눈이 한 뼘씩 자라 온다고 한다. 여행은 그런 힘이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의 청춘시절 여행은 큰마음을 먹고서야 떠날 수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방학기간에 기차표 하나로 전국을 누빌 수 있다. 우리 세대의 눈으로 보면 복 많은 세대다. 열차표 한 장이면 일정기간 해당 열차를 무제한으로 이용하면서 여행할 수 있는 만 25세(올해는 29세) 이하 청춘을 위한 상품 ‘내일로’가 있기 때문이다. 내일로 티켓만 있으면, 뜨거운 이 여름, 청춘을 만끽할 기차 여행이 가능하다.
젊음은 호기롭다. 그래서 젊은 시절의 여행은 더욱 뇌리에 남는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에 도전하는 용기가 더해지면서 자기주도적 여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일로’ 티켓으로 여행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내일러’라고 지칭하는 신조어도 생겼다. 젊음 하나 들고,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기차로 돌아볼 수 있으니 이젠 유럽의 유레일패스도 부러울 것이 없다.
소위 디지털세대로 불리는 ‘내일러’들은 방문지에서 행복한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린다. 이들의 즐거운 에너지와 지역 특유의 향기가 공유되고 그 곳엔 더 많은 방문객이 몰려온다. ‘내일러’들은 여행하며 침체된 지역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전북의 지자체들도 ‘내일러’가 안전하고 더 편리하게 우리 지역의 명소를 둘러볼 수 있도록 식당이나 숙소 할인, 투어버스 운영 등 체감할 수 있는 지원방안을 고심해야 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말했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라고. 이 뜨거운 여름, 자, ‘내일로’와 함께 내일의 희망을 찾아 떠나보자! 칙칙폭폭 기차를 타고.
△김진준 본부장은 1987년 철도청에 입사한 뒤 행정감사처장 등을 역임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