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56개국 225명 로마서 모여 발표·토론
영상 속 인물 외모·감정 변조 ‘딥페이크’ 화두
전문기업·NGO·프리랜서 등 연대·협업 추구
수년 전부터 언론계에서는 팩트체크가 화두로 떠올랐다. 가짜뉴스가 점점 정교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인공지능(AI)기술을 활용해 사람의 외모·목소리·감정까지 변조한 동영상이 나왔다. 언론은 진화하는 가짜뉴스 속에서 ‘팩트’를 건져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 6월 20일 부터 22일 까지 로마 세인트스테판스쿨에서 열렸던 ‘글로벌 팩트체크 서밋(Fifth Global Fact Checking Summit, Global Fact Ⅴ)’에 참가했다.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올해로 5회째다. 전 세계 56개국 에서 온 225명의 팩트체커들이 팩트체크의 현 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관기를 두차례에 나눠 정리한다.
△진화하는 가짜뉴스
가짜뉴스는 이미 악마의 편집수준을 넘어섰다. 과거에 찍힌 영상이나 사진은 최근 것으로 유통되며, 영상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내용이 변형된다.
올해 서밋에서는 영상 속 인물의 외형과 감정을 조작하는 기술인 ‘딥페이크(Deepfake)’가 화두였다. 사례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설을 조작한 영상이 소개됐다. 트럼프는 영상에서 “벨기에도 미국을 따라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트럼프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벨기에 플랑드르 사회당(Flemish Socialist Party)이 기후 변화에 대처할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난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트럼프 얼굴을 활용해 변조한 것이다.
그러나 공적인 인물이 등장한 영상이 뉴스로 둔갑해 유포되면 파장이 커진다. IFCN 알렉시오스 만찰리스 국장은 “팩트체커들이 영상이나 사진을 입수한 뒤 검증을 하지 않고 근거로 활용하면 도리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짜뉴스 맞춰 진화하는 팩트체크 기술
팩트체크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팩트체킹 자동화(automared fact checking)가 대표적이다. 다만 현재는 팩트체킹이 가능한 발언을 추출하거나 기존 데이터베이스 검색 결과와 대비시켜 사람의 팩트체크를 보조하는 수준이다.
아르헨티나 팩트체크 단체인 체케아도(Chequeado)는 자신들이 만든 체케아봇(Chequeabot)을 소개했다. 이 툴은 전국 30개의 언론 뉴스를 스캔해서 정치인이 했던 발언을 추출한 뒤, 기존에 DB화된 팩트체크 데이터 1000여개와 대조해서 주장의 진위를 가려낸다.
영국의 펙트체크 공익단체인 풀 팩트(Full Fact)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이들은 BBC 방송과 의회 발언록에서 확인이 가능한 클레임을 자동으로 가져와서 기존 DB자료와 비교해 검증하는 프로그램을 시연했다. 가령 “실업률이 줄어들고 있다”는 정치인의 발언을 음성으로 인식하면, 영국 통계청 자료를 찾아와 자동으로 사실 여부를 검증한다. 담당 국장 메반 바바카르는 “정치인들의 거짓주장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브라질의 아오스 파투스(Aos Fatos)는 소문과 주장에 대한 독자의 질문에 자동으로 응답하는 페이스북 메신저 봇 파티마(Fatima)를 선보였다.
이런 기술진화의 흐름에 발맞춰 글로벌 IT기업인 페이스북도 자동화 검증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프로덕트 매니저인 테사 라이언스는 “뉴스피드에 올라가는 가짜뉴스를 추려내기 위해 알고리즘 개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인공지능을 활용한 머신러닝기술을 통해 가짜뉴스를 판별하고 프랑스, 멕시코 등 4개국에선 영상, 사진조작 검증 시스템도 실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대 협업 통한 팩트체크의 정교화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선 스타트업 형태의 팩트체크 전문기업과 NGO, 프리랜서들이 팩트체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주로 연대와 협업의 모델을 추구한다. 진화하는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상호보완하려는 목적이다.
프랑스의 국제보도 전문채널인 프랑스 24(France 24)는 세계 각지의 옵저버(Observer)들과 손을 잡고 팩트체크 취재와 방송제작을 한다. 옵저버는 프랑스 24에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혀온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며, 간단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다. 지난 10년간 모인 옵저버는 5000여명이다. 이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돌아다니는 사진과 영상 중 검증이 필요한 것들을 골라 팩트체커들의 이메일과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보낸다. 거주하는 지역의 이슈를 제공하면서 직접 TV프로그램 제작·방영에도 참여한다. 해당 시스템을 만든 데릭 탐슨은 “정확한 팩트체크를 위해서는 비전문가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르헨티나의 체케아도도 좋은 협업 모델을 만들었다. 이들은 직원 12명과 자원봉사자 20명 정도의 작은 조직이지만 자국의 미디어 회사들과 제휴를 맺어 파급력을 높였다. 이들은 데이터 크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자사와 협력사가 팩트체크를 위해 공유한 데이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미국 듀크대학교 언론인 연구실(Duke Reporters’Lab)은 매일 컴퓨터가 자동으로 CNN방송을 모니터링해서 추출한 팩트체크 소재를 워싱턴포스트, NBC, 폴리티팩트에게 제공한다. 이들은 또 폴리티팩트 등 미국 3대 팩트체크 기관의 결과물을 자동으로 제공하는 앱인 팩트스트림(FactStream)을 개발했다. 이탈리아 로마=김세희 기자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 'IFCN'은
- 매년 국제 컨퍼런스 열어 전 세계 팩트체커 교류
IFCN(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은 2015년 미국의 미디어 교육기관인 포인터 재단(Poynter Institute)이 설립한 팩트체크 포럼으로 전 세계 팩트체커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언론재단(American Press Institute)과 제휴해서 팩트체커 양성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전 세계 팩트체커들의 교류를 돕기 위해 매년 글로벌팩트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특히 컨퍼런스에서는 팩트체킹과 인지과학, 팩트체킹의 자동화 등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가 열린다. 올해는 전북일보, KBS, MBN, SBS, 경향신문, 머니투데이, 문화일보, 부산일보,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등 10개 언론사의 팩트체크 담당기자들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팩트체크센터 정은령 센터장이 참석했다.
팩트체커가 지켜야 할 강령(The Code of Principles)도 마련하고 있다. 강령은 불편부당성과 공정성을 위한 헌신, 정보원의 투명성, 자금과 기관의 투명성, 방법론 공개, 기사 수정에 대해 열린 자세 등 다섯 가지다. 이 강령에 따라 팩트체크 기사를 쓰는 데 활용한 근거와 재원 등을 공개한다.
IFCN은 이 강령에 따라 자신들의 운영방식을 밝힌 팩트체크 기관을 회원사로 인증해주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의 폴리티팩트와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 영국의 풀팩트 등 세계 57개 단체가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
※이 취재는 한국언론학회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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