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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음악 자급자족(自給自足)

김은총(이상한계절, 싱어송라이터)

지역음악 자급자족. 최근 몇 년 동안 이상한계절의 활동기치로 내걸었던 말이다. 공연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마지막 곡 ‘전주에 가면’을 앞두고 지역음악 자급자족을 말할 때면 관객석에서 몇몇 실소가 터지곤 한다. 고도의 분업화시대에 자급자족이라니 게다가 한창 달콤따듯한 사랑 노래를 부르다 웬 정치적인 느낌의 언사란 말인가? 그 낡고 오랜 느낌의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왜 그 말이 거기서 나와?’라는 식의 반응을 자아내곤 한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어떤 노래를 향해 위와 비슷하게 반응했던 기억이 있다. 과거 가수 배일호가 전국노래자랑에 나와 ‘신토불이’를 부르던 그 순간, 어린 나에게도 꽤나 낯설고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사랑 노래 일색의 무대 속에서 신토불이는 특별했다.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이며, 제 땅에서 산출된 것이라야 체질에 잘 맞는다는 신토불이의 정신이 그 당시 농촌에서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그들의 농업현장에서 환영받았는지 나는 느꼈기 때문이다.

자급자족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도 이뤄져왔던 일이지만, 이제 자급자족은 구시대에나 가능한 구호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급격히 변화한 사회속에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공급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다. 신토불이가 쇠락해가는 농촌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처럼, 지방소멸시대의 지역에 사는 우리에게도 지역살이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음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다매체다채널의 환경 속에 다양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 같지만, 단적으로 음악소비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특정 거대음원차트의 영향력 아래 많이 재생되는 혹은 많은 이들이 듣는다고 여겨지는 음악을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소비한다. 능동적으로 자신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소비하고 싶은지 알고 스스로 결정하기 보다 저마다 개별적인 취향을 잃고 강요된 취향 속에 부유한다.

이러한 경향은 단순히 어떤 음악을 어떻게 듣는가 하는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화산업의 다양한 영역에서 확장되어, 각자 개개인의 필요에 의한 문화소비가 아니라 산업이 형성한 특정한 유행을 집착하듯 쫓게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특정한 문화와 정신만이 주류라고 취급하게 하고, 우리의 개성과 정체성 그리고 개별적 삶의 영역을 상대적으로 하등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 청년세대의 무기력과 낮은 자존감의 원인을 찾는다. 개개인의 자아가 다양한 기준과 가치로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속에서는 그 누구도 진정으로 자신을 인정하고 만족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더 나다운 것, 더 내게 필요한 것을 찾고, 더 다양하게 욕망하고 소비해도 된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다양한 욕구를 채우는 일 앞에서야 나는 비로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자급자족의 필요성을 말할 수 있다.

‘지역음악 자급자족’은 지역에서 직접 음악을 만들어 지역민과 더불어 나누고, 지역의 다양한 문화 욕구를 일깨우는 것. 그로써 지역을 더 자유롭고 풍성하게 하는 꿈이 담겨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게 다양한 나의 필요를 드러내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지역을 만드는 건 우리에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지역에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가치, 이제는 우리가 직접 공급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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