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건물주 상가 5곳 임대료 2배 올려
5곳 중 4곳 소송하다 떠나, 1곳도 조만간
6평 1억 6000만 원 보증금 월세 440만 원
건물주 세입자 상생 협력네트워크 필요성
전주 한옥마을 상점 임대료 상승 폭이 하늘 높은지 모를 정도이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심지어 건물주와 소송전을 벌이다 짐을 싸고 떠나는 세입자도 생겼다. 한옥마을에서 점포를 내놔도 높은 임대료 탓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적은 것이 현실인데, 전문가들은 세입자의 피해를 넘어 관광 명소의 가치도 훼손되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임대료 급증에 소송 번져
전주시 한옥마을 태조로의 한 건물은 지난 2015년 세입자 5명과 건물주 간 임대료 관련 법정 다툼이 벌어졌다. 임대료를 두 배나 올려버린 건물주를 상대로 ‘너무 과도하다’는 소송을 낸 것이 그것이다.
지난 2013년부터 전통 과자를 판매하는 A씨를 제외하고 세입자 4명은 떠났다. 보증금 1억6000만 원짜리 19.8㎡(6평) 공간을 빌린 A씨는 법원의 조정을 통해 임대료 440만 원을 내고 있다.
건물주는 애초 임대료 300만 원에서 600만 원으로 두 배를 불렀지만, 법원은 양측의 의견을 수용해 1.5배 수준으로 정해 준 것이다.
A씨는 “전주 한옥마을이 평수 대비 월세가 과도하게 높다”며 “법원이 중재한 가격도 높은 측면이 있다 보니 소송을 하다가 가게를 정리한 점포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과도한 임대료 탓에 건물을 내놔도 세입자가 없어 건물주가 3곳을 직접 운영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한 점포는 보증금 1억과 임대료 400만 원에 내놨는데 6개월이 넘도록 비어 있다.
A씨는 “현재의 임대료를 깎아주지 않으면 내년 3월 계약 갱신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다른 상인들의 심정도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임대료 상한 없어
지난 5일 한옥마을 한 점포에서 만난 상인은 “요즘 일부러 천천히 음식을 만들고 있다”면서 “관광객이 줄다 보니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이 조금이라도 더 있어 보이려는 자구책”이라고 말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임대료가 급등했던 시기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사태 이후다. 선박과 비행기가 아닌, 육지 관광이 활성화하면서 한옥마을은 전성기를 달렸다.
당시 고객이 몰리면서 임대료는 2~3배 뛰었다. 하지만 이듬해 메르스 사태가 터지고 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관광객이 급감했다.
또 다른 상인은 “관광객이 줄어든 시점에서도 경기가 좋았을 때의 임대료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신축 공사로 덩달아 인근 상가 임대료까지 오르면서 못 버티고 떠나는 세입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지역 활성화 뒤 임대료 때문에 세입자가 밀려나는 일명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단적이 모습이다.
여기에 대부분 한옥마을 내 세입자들은 5% 이내로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전주시의 경우 보증금과 10개월 간 임대료를 포함한 환산보증금액 기준 2억7000만 원을 초과하면 보호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과도하게 오른 임대료가 보호법에서도 제외되게 하는 셈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재정 취지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분들은 자본의 여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면서 “이들은 행정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없고, 법원의 조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상생적 협력 네트워크 필요
한옥마을은 높은 임대료 탓에 수익에만 치중하다 보니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있다. 수공예품 등 전통성을 가진 점포가 사라지고, 회전율이 높은 길거리 음식점이 즐비한 이유가 그것이다.
이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옥마을의 정통성과 분위기를 훼손하고 있지만, 전주시는 제대로 된 현황조차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
대구광역시는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에 따른 지역 안정화 방안 마련 및 보호를 위한 조례를 지난 3월 제정했다.
조례에는 임대인 임차인 간 상생 협력 체결 권장이나 5년 이상 장기 임대차가 가능한 상생 협력 상가 조성 및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앞서 대구시는 조례 제정을 위해 지난해 8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방안을 위한 학술연구용역을 의뢰했고, 젠트리피케이션 현황 등을 조사했다.
전주대학교 정철모 부동산학과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우리나라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가진 자가 더 많은 이익을 찾는 건 일반적인 자본주의 흐름”이라면서도 “이를 방치하면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안은 상생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상인과 건물주가 각각 연합회를 만들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적정한 선에서 임대료를 맞춰가는 게 현실적이다”며 “행정은 이들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주는 가교 역할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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