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 지하보도 앞 편의점을 기억한다. 그곳은 모임, 데이트 등 여러 만남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곳을 조금 더 벗어나면 하나 남은 음반사가 있다. 좋아하는 가수 앨범을 몇 번 사본 게 다였지만 뿌듯한 곳이었다. 물론 그곳은?분식집이 되었다. 용도가 아닌 분위기로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다. 그런 공간들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들리면 마음이 헛헛하다. 이런 말을 쓰는 이유. 바로 북스포즈가 문을 닫았다.
“동네책방들의 삼성 같은 곳이 어쩌다가…” 나는 재미있게 듣지만, 말씀해주시는 분들은 걱정이 가득하다. 이게 다 인사를 제대로 못한 탓이다. 2000권 가까이 되는 책들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포장해서 보내니 주변에 인사를 할 여유가 사라졌다. 한 권씩 봤을 때는 책이지만 상자에 포장하여 나르면, 내가 있는 곳이 책방인지 피라미드 공사현장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당최 진지할 수 없는 것이 나의 단점이다. 20대의 마지막 자락을 함께한 공간을 정리했으니 허전한 마음이 생긴다. 전북일보의 청춘예찬에 연재했던 책방의 이야기들처럼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침대 밖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던 내가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게 다 함께 북스포즈를 만들어준 북스포즈 디렉터님들과 손님들 덕분이다.
송은정 작가의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라는 책이 있다. 누구나 ‘책방이나 한 번 열어볼까?’하는 시대. 책방을 열었고 여러 이유 때문에 문을 닫게 된 웃픈 내용이다. 송은정 작가의 책방 이름은‘일단멈춤’이었다. 결국 책방 이름 따라간 것이 아닌지 쿡쿡 댔었는데. 우리 책방 이름은‘북스포즈(Pause의 뜻은?일시정지)’였다. 여러분도 책방을 내시려면 이름을 크게 지어라. 진지하다. 동네책방 대기업이라던가, 동네책방 돈방석이라던가. 오늘,>
북스포즈는 왜 멈춤을 선택했는가? 여러분의 걱정과 달리 심플한 이유였다. 북스포즈를 만들 때 우리는 2년을 기한으로 일종의 실험을 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되었고 북스포즈를 되돌아봤다.‘우리는 더 좋은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아니었다. 다행히 우리가 잠시 문을 닫더라도 좋은 동네책방들이 전주에 정말 많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은 손님들 때문이다. 북스포즈가 문을 열기도 전부터 언제 문을 여냐고 찾아왔던 단골부터, “학교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었어요”라고 말하는 학생까지. 그들에게 조금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지면을 빌려 정말 감사했다는 말씀을 전한다.
아쉬워하지 말자. 생각해보면 많은 책들을 이렇게 (강제로)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덕분에 예상치 못하게 한 가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음료수다. 평소에 마실 것을 참 좋아하지만, 이 안에 숨겨진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와 북스포즈 사람들은 ‘마시즘(마시다+ism)’이라는 온라인 미디어를 만들고 1년 동안 운영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더 잘하기 위해 책방을 정리한 것이다.
북스포즈의 문을 열리지 않을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여전히 전주에서 좋아하는 일을 활발히 하는 사람들이다. 지역에 대한 애착, 그리고 시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만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쉬워하지 마시라. 즐거운 일이 가득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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