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악의 오늘을 겪으며 밝은 내일을 꿈꾸다
- 류기형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조용안 전 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
대학원 시절에 우리음악의 ‘악(樂)’의 개념에 대해 토론한 기억이 있다. 서양음악과 달리 음악과 노래와 춤이 함께 어우러지는 특징이 있다고들 했다. 지금 과연 그럴까? 서민 예술로서 음악과 노래와 춤이 함께 어우러진다는 민속악. 과연 그런지 두 명의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국립민속국악원 류기형 예술감독. 50대 중반을 맞이한 그는 30년 동안 마당극패 ‘우금치’를 이끌어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 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 조용안. 많은 이들이 그를 전라북도 판소리북의 대들보로 여긴다. 몇 해 전 쉰을 넘어선 그는 40년 가까이 판소리북을 치고 있다. 남원과 전주에서 이들을 만나며 그들이 겪고 있는 민속악의 오늘과 바라는 미래를 듣고자 했다.
△류기형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 “악·가·무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열린 사고 필요”
류기형 감독을 만난 건 4월 비오는 어느 날이었다. 남원에 있는 국립민속국악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업무를 바삐 끝내고 온 그는 필자의 질문에 서슴없이 답했다. 필자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 민속악은 음악, 노래, 춤이 어우러진다는 총체적인 ‘악(樂)’의 예술관을 가지고 있지요. 서민적이라는 특징도 있고요. 총체성과 서민적 성격의 관점에서 민속악을 접하고 있는 현재와 바라는 미래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류 감독은 소통과 동시대성을 강조했다.
“민속악에서 중요한 것은 대중과의 소통이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 악, 가, 무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고요. 하지만 현재는 음악은 음악, 노래는 노래, 춤은 춤으로 가르는 장르화된 사고가 많은 듯합니다. 민속악은 시대에 살아있어야 하잖아요? 동시대성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명인, 명창 선생님들을 보면 장르에 한정되지 않고 음악, 노래, 춤을 두루 익히고 펼쳤잖아요? 분야별로 장르화되고 개별화 되는 현상은 일면 서구식 제도 교육의 영향으로도 보입니다. 전공을 세분하고 전공에만 집중하게 하는 현상이 있잖아요? 장르별로 개별화 되다보면 공연에서 악, 가, 무를 갖춘 공연자 10명이면 될 것이 50명도 더 필요하게 되는 상황이 되요. 오늘날 공연시장에서는 다재다능을 필요로 하는 것이 트랜드인데 우리 민속악의 흐름은 그와 반대로 가는 것 같아서 아이러니해요.”
공연자들의 문제의식이 중요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류 감독은 겪고 있는 ‘오늘’에 대해 얘기했다.
“공연현장에서는 생동감 있는 사고가 필요합니다. ‘내가 왜 그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식의 경직성을 극복해야지요. 현재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주말 상설공연이 있는데 일종의 갈라쇼 형식의 공연이에요. 이 공연에 연출 개념을 도입하고 사회자를 없애고자 했죠. 크고 작음을 떠나서 공연은 관객의 마음을 담아야 하잖아요? 관객의 마음은 그릇에 담긴 물 같아서, 관객의 마음을 담은 그릇이 공연 내내 고요하게 물위에 둥둥 떠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흐름을 만드는 것이 연출이고요. 그것을 시도하고자 했던 것이죠. 하지만 사회자를 없애는 등 기존과 달라진 패턴에 대한 문제제기를 좀 받았어요. 어디나 마찬가지겠죠. 여기만 그런 게 아니고요. 변화는 언제나 처음에는 낯설기 마련이고, 문제제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소통하고 믿음이 생기면 될 것이라고 봐요. 민속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좋은 방향으로 함께 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조용안 전 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 “민속악은 틀이 없어”
조용안 명고. 그를 만난 건 전주 아중리에 있는 커피숍이었다. 역시 4월 어느 날에. 민속악에 대한 마찬가지 질문에 옛 선생님들께 들은 농담을 얘기해줬다.
“민속악은 민간의 음악이고 서민적인 음악이죠. 궁중음악이나 무속 등 여러 분야에서 서민의 생활로 함께 옮아온 것이라고 봐요. 오늘날에는 민속악이 보편화되었죠. 예전에는 소위 ‘잽이’들만 하는 음악이었지만. 과거에는 궁중음악하는 사람들이 민속악하는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고 그랬대요. 그러면서도 몰래 민속악을 했다고 하더군요. 정악하시는 어떤 선생님께서 ‘나도 (공연장에서) 병풍 뒤에서 산조 여러 번 불었다.’는 농담을 자주 하셨거든요. ‘병풍 뒤에서 악기를 분’ 정악잽이들이 꽤 있었다고 하더군요. 몰래 했던 민속악이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고루 접하는 음악이 되었죠. 궁중음악이나 정악은 규정된 틀이 명확한 음악이죠. 반면 민속악은 틀이 없어요. 그래서 발전가능성이 많죠. 그리고 일류와 삼류의 구분도 심하고요.”
민속악이 음악, 춤, 노래가 함께 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재삼 물었다. 조용안 명고는 명인들의 교류를 얘기해줬다.
“예전에는 명인들끼리 서로 교류를 자주했대요. 소리 명인에게 춤 명인이 가서 소리 배우고, 춤 명인에게 기악 명인이 춤 배우고, 서로 그랬대요. 전국 각지의 명인들이 서로 그랬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진도 씻김굿의 박병천 선생과 진주 검무 김수악 선생이 자주 교류했대요. 서로 번갈아 가며 춤추고, 반주하고, 소리하고 그렇게 예술 자체가 좋아서 즐기고 교류했다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음악과 노래와 춤이 함께 했고요.”
지금은 어떤지 물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금은 한 가지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이에요. 살기에 너무 바빠요. 중간세대인 저라도 명인 선생님들의 그 감성과 멋을 후대들에게 이어주는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표현해 주는 예술을 찾아 왔다. 민속악은 서민들을 대변하는 예술이었고 지금은 좀 더 보편화되었다. 시민들이 주인인 오늘날, 자신들의 예술로서 시민들은 과연 민속악을 택하고 있는가? 류기형 감독과 조용안 명고는 각자의 자리에서 민속악의 오늘을 겪으며 좀 더 밝은 내일을 꿈꾸고 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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