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소한 체격에 걸음걸이마저 어둔한 그를 보는 일은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동호회 활동에서다. 어눌한 말투 때문에 그의 말을 들으려면 미간을 찌푸려가며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는 뇌졸중으로 식물인간이 될 뻔했는데 악전고투 끝에 고비를 넘겼지만 그 후유증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가 이런 상태로 나마 여까지 오도록 일으켜 세운 것은 본인의 필사적인 노력은 물론이고 가족의 사랑과 헌신의 힘이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임에도 취미활동의 끈을 놓지 않고 성실히 참여한다. 무너진 건강 때문에 나머지 인생을 패배자로 살지 않겠다는 의지인 듯했다. 그러나 자유롭지 못한 신체적 취약함 때문인지 자기표현의 기회가 통 없었고 내가 그를 깊이 이해하는데 제한적이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사람은 눈에 비치는 상대의 겉모습만으로 우선 그 사람의 총체적인 역량을 추측하며 단정 지으려 한다. 용모와 언변, 문필과 판단력 등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처음 대면하는 상대를 평가하는 잣대라면 외모나 차림새는 첫 관문인 셈이다.
다음으로 목소리나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또 다른 끌림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가 설사 미흡했다 해도 부드럽고 밝은 목소리의 여성이나 윤기 있는 저음의 남성에게 마음이 한층 설레고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다. 장소와 대상에 맞는 진실한 화술은 더욱 신뢰감을 느끼게 하고, 나아가 훌륭한 언변은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과 인격까지도 짐작하게 하여, 설사 부족했던 외향적 평가도 상쇄하게 하는 마력을 갖는다.
어느 날 문학 사이트에서 우연히 그가 발표했던 지난날의 많은 글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두 번째의 관문에서도 나의 후한 평가를 받기 힘들었던 그가, 글을 통해 관념적이었던 내 많은 생각을 바로잡게 했다. 절제된 문장은 펄펄 살아 움직이는 기운을 보였고 필력에서 묻어나는 깊은 사유와 가치관은 보이지 않은 내면의 인품과 곧은 성품까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나이 들고 추레해 보이던 외모나 중언부언하는 듯한 명료하지 않은 답답한 말만으로 그의 모든 것을 평가절하 했던 나였다. 그런데 멀쩡해 보였던 나의 능력의 훨씬 우위에서 미시적인 안목과 편견, 오만함을 꾸짖는듯했다.
오래전의 글을 통해서라도 그의 고매한 사상을 살필 수 있었던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글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그의 판단력까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더는 그의 능력을 살필 수 없는 조건에서도 그가 가진 총체적 고등 능력까지를 알게 하여 그를 대하는 마음을 새롭게 했다.
필체나 문장력은 저마다가 배워, 품고 있는 학식이며 내면의 표출이다. 그것들이 결국은 그 사람의 인격과 품격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나는 어리석게도 내 주관적인 시각에 비춰지는 상대의 겉모습만으로 그의 많은 부분을 쉽게 재단하며 선입견을 품고 말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그런 것들은 나의 원초적인 느낌이었을 뿐이다. 인간적인 언어가 쌓인 진정한 내면의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는 맑은 눈과 마음이 내게 필요했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존경받는 사람이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놓는 말과 글이 언제, 어디서고 행동과 일치 해야만 한다는 것은 나의 오랜 생각이다.
* 김덕남 수필가는 전주용소초등 교장으로 정년하고 에세이스트 신인 수필가상으로 등단했으며, 풍남제 주부백일장(시), 전국 물사랑 공모전(은상) 향촌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수필집 <아직은 참 좋을 때> . <추억의 사립문> 이 있다. 추억의>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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