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둘 곳 없는 마음으로 찾아간 그의 SNS에는 ‘복숭아’라는 별명처럼 아름답고 환한 사진들이 남아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기념하는 게시물과 ‘Girls Supporting Girls(여자는 여자가 돕는다)’라는 문구가 적힌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진도 그곳에 있었다. 설리는 개인 SNS외에 그림 계정을 운영하기도 했다. 인물을 그린 스케치나 믹스커피로 흩뿌린 그림, 돌 위에 꽃과 나무를 새겨넣은 창작물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많았던 그는 단순한 유명인으로 치부되기에는 아까운 창작자이자 예술가였다.
그래서 나는 설리를 좋아했다. 숨길 수 없이 뿜어나오는 발랄한 에너지가 좋았고, 사회 문제에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용기에 놀랐다. 그는 험악한 댓글에 생채기를 입으면서도, 제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여성연예인에게 강요되는 이중잣대를 거부하고, 그저 생각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조롱하고 힐난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대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성숙한 인간이었다. 오히려 그에게 심한 악플을 달았던 또래를 선처하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동갑내기 친구가 전과자가 되는 게 미안해서요.”
설리를 생각하면 2016년 어느 날 공항으로 들어서며 그가 품고 있던 책이 떠오른다. 지금껏 한번도 보지 못한 연예인 출국 사진이라 그 모습은 퍽 특별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책이 시집이라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시집을 품에 안은 그 모습에 왠지 모를 동질감과 작은 소용돌이를 느꼈다. 그 시집은 박상수 시인의 <숙녀의 기분> 이었다. 설리가 공감하며 읽었을지 모르는 시의 귀퉁이를 접으며, 나는 오랫동안 이 시집을 머리맡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펼쳐보면 뚜렷하게 보이는 말들, ‘6인실’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박혔다. 숙녀의>
아무도 없이 나는 이 밤에 안겨 있어요/하늘 옷과 스물네 개의 구슬/그리고/나예요/다만 나인 거죠
설리가 이 세상에 끝까지 살아남아 웃어주길 바란 건 지나친 욕심이었을까. 그의 죽음 이후 댓글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악플러를 더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에선 “본질은 ‘여혐(여성혐오)’에 있다”며 이에 관한 보도지침과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이 의견들만큼 중요한 것은 그 삶의 방향이 어떻든 사람을 함부로 검열하지 않는 세상의 태도에 있다. 그 태도가 또다른 자기검열로 전염돼 한 사람의 기질과 개성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의 공포에 있다. 설리를 여성연예인이라는 젠더나 유명인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그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창작자로, 따뜻한 예술가로 지켜봐줬다면 덜 갑갑하고 덜 무례한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다만 나”이길 바랐던 설리가 그곳에서 지켜볼 이곳이 계속 두렵다. 왜 우리는 살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가. 설리가 남긴 것들을 책처럼 공부하고 시로 받아들어야 할 이유, 여기 무수히도 많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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