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의 겨울, 도심 속 섬과 같이 항상 조용하던 마을에 오랫만에 왁자지껄한 잔치가 벌어졌다. 낙타 봉우리만큼 커다란 2동의 천막 속에는 삼삼오오 모여든 노인과 아이들로 가득했고, “진옥아~, 봉규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노인들의 외침은 자세히 들어보면 어린시절 편히 부르던 친구들의 이름이었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책임지면서, 사회에 물들면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버지들의 이름. 이날만은 그들의 친구들에 의해 마음껏 불리는 이름. 그렇게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이곳은 팔복오길(팔복5길 41-18). 이미 이곳은 1980년 어느 겨울이 되어 있었다.
2019년 공간의 재탄생(Rebirth of Space) 카멜레존은 소비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였다. 카멜레존이란 특정 공간이 협업·재생·개방·공유 등을 통해 본래 가지고 있던 하나의 공유 기능을 넘어서 새로운 정체성의 공간으로 변신하는 트렌드를 말한다(출처 : 트렌드코리아2020, 미래의 창, 김난도 외). 즉, “팔복 카멜레온”이라는 프로젝트 명으로 시작된 에보미디어레지던시의 “문화복합공간 팔복오길”은 전주 공업지역 내 오래된 가옥을 기반으로 5명의 작가가 협업하고, 예술을 도구로 재생하여, 일반인에게 개방 및 공유한 동네 가옥형 갤러리 공간이다. 디자인에보가 진행중인 공간재생 2차 프로젝트명이기도 하다.
레트로(Retro) 풍의 박세진(Ogilee, briquette 외)의 작품에서부터 뉴트로(Netro) 풍의 김현정(Not in my house series), 이현지(팔복동 방 series), 카하수완 푸총(Room X, Y, Z series) , 장지연(Icecream series)의 작품까지 집을 매개체로 한 다양한 실험예술을 지난 1년동안 무수히 노력하고 선보였다. 미디어아트(mediaart), 설치예술(Installation)등을 통하여, 그들은 그 시절과 필자의 어린시절을 농담삼아 이야기하며, 더불어 우리네 삶이 이렇게나 고단했었음을 회상한다.
“예술은 잘 모르겠지만, 현정이의 작품은 참 아름답고, 행복해보인다”라는 보일러 수리공 출신의 노인.
“맞아 아. 우린 항상 연탄은 켜져 있다고 생각했잖아. 부모님이 매번 새벽마다 갈아주시는 것도 다 커서야 알았지”라며 눈물을 글썽거리던 50대의 여인.
“그땐 우리 아버지 참 무서웠지. 저녁식사 땐 감히 딴 짓을 할 수도 없었어. 그땐 그랬지”라며 작품 앞에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계시던 아저씨.
문화, 특히 예술의 장점은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아니 못한다 하더라도 슬픔, 기쁨, 좌절, 행복 등 그것이 품고 있는 작가의 감정 정도는 누구나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팔복오길에 놀러와 그들의 과거와 지금을 돌아보고, 같이 떠들고 웃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린 충분히 성공한 사람이다.
흥에 겨워 하모니카 연주를 하시는 노인,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대며 연신 소주를 들이키는 노인, 태어나 동네잔치는 처음이라며 못먹어본 뷔페 음식을 연신 퍼나르는 동네 꼬마까지 그날은 간만에 그 곳에 왁자지껄한 잔치가 벌어졌다. 멋스러운 풍물패의 꽹과리 소리만큼이나 흥겹고 행복한 그들의 표정 속에 이제껏 느껴왔던 우리의 고단함도 눈 녹듯 사라졌다.
2019년 12월 13일 에보미디어레지던시 팔복오길은 해피엔딩이다.
KBS1 네트워크기획 문화산책 [공간, 공존의 가치를 담다]편(2019년 11월 25일)을 통하여 소개되었다.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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