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소든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그 힘은 그곳에 애착을 갖게 하고, 그곳에서 자란 이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도 한다.
전주시는 도시에 자연스레 쌓인 얼을 탐구해 전주 사람들의 고유하고 특별한 성질인 대동·풍류·올곧음·창신의 정신을 찾았다. 그리고 전주의 정신을 ‘꽃심’이란 단어에 담았다. 그중 ‘올곧음’은 의로움과 바름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으로, 부당함에 맞섰던 민족정신을 상징한다.
임진왜란 때 안의·손홍록·오희길 등이 지켜낸 조선왕조실록이 있던 전주사고, 동학농민군 집강소를 두었던 전주성, 을사늑약 이후 서문 밖 일본인들에게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전주한옥마을, 3·1 만세운동이 열렸던 남문장터 등 눈에 닿는 곳곳이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하지만, 전주를 찾는 관광객은 물론 이곳에 사는 우리조차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있다.
역사는 문학을 매개로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작품은 머무는 공간에 대한 뚜렷한 정체성을 각인시킨다. 현실감 있게 버무려진 기록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역의 역사가 전해지고, 작품에 새겨진 삶의 자리를 보며 내 고장의 지난날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 시절을 살아냈던 우리의 문인들은 현실과 역사를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웠고, 시대의 아픔을 글로 남겼다.
전주에서 고독의 굴레를 벗은 시인 박봉우(1934∼1990)는 1975년 전주에 정착해 인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전주에서 펴낸 시집인 『황지의 풀잎』(창작과비평사·1976)에서 독재와 혁명의 60·70년대를 시인이 어떻게 몸부림하며 부딪쳐왔는가를 엿볼 수 있다.
‘오늘은/완산칠봉/내일은/풍남문 근처에서/아직/전주를 알기는 이르다/당분간/시가 되지 않은/이 밤/울고만/울고만 싶어라’(「전주에 와서」 중)
1987년 6월 항쟁부터 1991년까지 전주의 민주화운동을 대하서사시로 형상화한 시인 최형(1928∼2015)도 꾸준히 시대의 아픔을 토해냈다. 그의 대표작인 『다시 푸른 겨울』(시와사회·2000)에는 ‘이윽고 모두가 중앙성당 앞에 이르러서/촛불 행진은 끝낸 셈이지만/누구라 없이 그대로 거리와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시위행렬로 넘쳐나던 팔달로와 관통로, 코아백화점(현 세이브존) 광장 등 그 장소에서 함께 한 이들의 진솔한 기록이다.
작가 최명희(1947∼1998)의 소설 「혼불」에도 의병활동, 우리말·우리글 쓰기 운동, 독서회 조직, 독립만세운동 등 일제강점기 전주의 수난사와 항일투쟁의 행적이 세세하다.
‘기미년 삼월에 독립만세 운동이 거국적으로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이 용머리 고개를 하얗게 넘어오며 목메어 만세를 불렀지.’(「혼불」 10권 296쪽 중)
완산칠봉, 풍남문, 중앙성당, 팔달로, 용머리 고개 등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는 대부분 우리에게 낯익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낯설다. 전주시는 이병기·신석정·유진오·하근찬·이태 등 우리 고장과 깊은 인연을 맺은 ‘올곧은’ 문인들을 조명하고, 문학 속 전주정신을 일깨워야 한다. 청년예술가들과 함께 ‘전주문학지도’를 만들어 도시의 정체성을 품은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면, 역사와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이의 발길이 전주로 향할 것이다. ‘꽃심’의 향기가 널리 퍼질 때, 국가관광거점도시 전주는 더 활짝 피어날 것이다.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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