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 이제 막 문화예술계에 진입했을 때 무대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시간이 흘러 ‘무대가 나의 삶이 되겠구나’라는 막연한 결심이 들 때쯤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진짜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열정이 솟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누가 ‘진짜 예술가’인지, 무엇이 ‘진짜 예술’을 판가름하는 기준인지 알지 못했고 유명작가, 유명연출가 등 대중에게 알려진 성공한 예술가가 하는 창작행위는 적어도 진짜 예술일 것이라는 믿음에 빠졌다. 그들의 작품을 관람하고 수집하는 데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고 저서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에 꽤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들의 작품을 닮고 싶었고 그들의 삶을 선망했다. 어떻게 하면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과정을 시작하고 전문지식을 습득하여 구사할 수 있는 전문가적 언어가 늘어난 것에 대한 자신감은 커졌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예술은 수렁에 빠진 듯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위대한 작품들과 나의 작품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창작과정에 대한 자기검열이 심해졌으며 열등감과 부끄러움이 더해졌다. 무대는 가장 무거운 숙제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렵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예정된 숙제였을지도 모른다. 정작 내 삶의 반경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들여다보지 않으면서도 무대 위 소재에 대해서는 내 일인 양 분노하였고, 다수가 인정하는 성공한 타인의 삶만을 욕망하며 그 외양을 흉내내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공개기자회견을 통한 나의 미투는 이러한 치열한 자기고민에 대한 고백이었다. 더 이상은 나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들에 대해 외면하지 않으리라, 내가 서 있는 이 곳에서 내 세상을 관철하리라, 그것이 예술가로 존재하는 나의 시발점이며 정체성이고 오롯이 내가 담아낼 작품의 소재임을 깨달은 셈이다. 그리고 그 해, 수많은 문화예술계 미투를 보며 ‘진짜 예술’을 바라보는 나의 기준은 분명히 달라졌다. 천재라 불리던 유명연출가의 성폭력 사건을 보면서, 미투 가해자의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예술가였다는 사실을 지켜보면서, 추앙받았던 그들의 유명 작품이 피해여성의 성착취가 묵인된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모든 상황을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전문가적 기량만을 뽐내기에 바쁜 몇 몇의 유명연출가의 행보를 보면서 내가 선망했던 ‘진짜 예술’은 어쩌면 허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최근 성착취채팅방 사건과 한 정치인의 “딥페이크,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만들 수 있지 않냐”는 발언과 관련 법안을 졸속처리한 국회를 보며 이 사회의 일원이자 여성인 나는 한없이 분노한다. 또한 이 분노가 무력감이 되지 않기 위해 예술적 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이바지할 작품을 세상에 탄생시켜야 한다는 책임마저 생긴다. 나는 여전히 ‘진짜 예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타인을 착취하고 괴롭히며 묵인, 방조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던 어떤 것에도 예술이라는 이름을 허락할 수 없다는 기준은 명확하다. 폭력과 배설에 예술을 빙자하도록 허락하지 않겠다.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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