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방송사 간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판소리 명창 이화중선(李花中仙. 1898~1944)에 대해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이화중선 특집 방송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의문이 들었다. 왜 부산에서? 그것도 춤이 아니라 판소리를? 자신을 이화중선 매니아로 소개한 간부는 전북이 부럽다고 했다. 전북을 한 번 씩 다녀갈 때면 판소리 싹을 틔우는 지난한 작업에 좋은 기를 얻어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전북하면 판소리를 으레 연상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전북은 타지역과 달리 민관 모두 판소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유별나다. 그래서인지 특정 유파가 득세를 보이는 서울이나 광주, 전남, 영남 지역과 달리 전북에서는 정정열제, 만정제, 동초제에 보성소리와 동편소리까지 다양한 판소리가 공존하며 성장하고 있다. 판소리 지방문화재 보유자 수도 타지역을 압도한다. 하지만 내실면에서 ‘빛좋은 개살구’라는 비아냥성 평가가 의외로 많았다. 적어도 올해 초까지는 말이다.
그 근거로 몇몇 전문가들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 즉 인간문화재 숫자를 들었다. 초대 인간문화재 김소희, 김여란 명창 이후 강도근, 오정숙 명창을 제외하면 전남, 광주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특히 근 십 여 년 동안 전북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안숙선 명창조차도 판소리가 아닌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로 되어 있으니, 그러한 비아냥에 이렇다 할 반론을 내기가 어려웠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문화재청이 남원 출신 이난초 명창과 전주에서 뿌리내린 김영자 명창을 각각 흥보가와 심청가 인간문화재로 인정하면서 이러한 비판은 수그러들게 되었다.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수궁가, 적벽가에서 추가 보유자가 나올 것이라는 희망도 갖게 된다.
물론 판소리를 단순히 인간문화재 숫자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소리꾼이 맘 편하게 소리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 판소리 향유 층의 존재, 이것이 판소리를 평가하고 이해하는 바로미터여야 한다. 또한 최근 미스트롯 출신 송가인을 통해 증명되었듯, 스타성을 가진 인재의 배출이 중요하다. 더하여 판소리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타지역을 압도하는 공연 인프라, 공연장을 꽉꽉 메우며 추임새를 맞추는 열성적인 팬들 그리고 관의 지속적인 후원은 전북 지역이 왜 판소리에서 강세를 보이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력있는 인재 배출을 위한 환경은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한때 세 개의 국악과를 보유하였던 전북지역 대학 중 현재는 전북대만이 국악과를 운영하고 있다. 예고 출신 우수한 국악 인재들이 타지역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판소리 역사를 알리는 일은 어떠한가? 이화중선은 미안한 말이지만 송가인과는 급이 다른 대스타였다. 그래서 전설이라는 평가가 붙는다. 이화중선이 있었기에 김소희-안숙선으로 이어지는 전북 판소리의 중흥이 가능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화중선의 삶에는 가정법과 추측이 난무하다. 이화중선이 살다간 오수 구시장 내에는 그 흔한 표지석 하나 없다.
전북이 명실상부한 판소리 성지가 되기 위해서는, 제2, 제3의 이화중선, 이난초, 김영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 신발끈을 동여맨다는 심정으로 배출부터 관리까지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김문성 평론가는 이북5도 문화재위원, 충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예경 평가위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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