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기대.”
모든 출향 전북인들이 고향에 대해 갖고 있는 마음이다.
재경 전주시민회 류균(74·사진) 초대 회장은 스스로에게 이 화두를 던졌다. (전주시민회는 14개 재경 시·군 향우회 가운데 가장 늦은 올 1월 출범했다.)
그는 취임 후 6개월여 동안 이 같은 고민 속에서 전주시민회의 역할을 모색해 왔다.
그의 결론은 ‘향우회는 단순 애향모임이 아닌 새로운 개념의 미래형 시민단체’였다.
향우회가 이전과 같은 친목도모 공간이 아닌, 고향의 미래를 고민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구심체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더불어 그는 “미래가 현재를 만든다”며 전북의 미래를 과감하고도 창의적으로 설계하고 준비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재경 향우회의 새로운 모델 제시로, 앞으로 여타 향우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내내 그는 열정적이었다. 고향발전을 위한 그의 제언은 칠순의 인생만큼이나 따뜻하면서도 풍부했다. 한편으로 냉철하고 날카로웠다.
- 재경 전주시민회 초대 회장을 맡으셨는데, 소감은.
“재경 전북도민회 산하에 14개 시·군 향우회가 있지만 유독 전주시민회만 없었다는 게 좀 이상했는데, 2년 전 도민회가 의욕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차제에 전주시민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부 논의가 있었고, 몇몇 분들이 제게 참여를 권유해 고민 끝에 수락을 했습니다.
도민회와 시·군 향우회는 고향에 대한 사랑과 추억을 공유하고 함께 나누는 친목모임이지만 시대적으로 고향 전북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절박하다고 할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함이 있어서 전주시민회도 동참해야겠다는 조그만 사명감을 안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 전북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절박하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전북은 현 상태에 대한 불만이 많습니다. 바꿔 말하면 낙후된 도세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 있고, 상대적으로 발전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한때 250만이었던 인구가 180만으로 줄어들면서 모든 경제지표가 전국 최하위를 맴도는 가난한 도(道), 낙후된 도(道), 소외된 도(道)라는 자괴감이 팽배합니다.
이렇게 된 데는 1970년 이후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농도였던 전북이 산업화에서 뒤처지고 정치·사회적으로 밀리는 시대적 고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사회는 변화했고, 과거의 유산이 더 이상 우리를 속박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어서 전북은 지금 ‘희망과 기대’를 얘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요.
“‘구각(舊殼)-낡은 껍질(앙상 레짐)이 깨트려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재대신 민주화가, 굴뚝공장의 산업화시대 대신 정보 기술과 문화산업시대가, 모방과 복제의 타성대신 꿈과 상상력의 창의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 전북은 그런 시대에 최적화되어 있는 최우성적 재능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전북은 자신감을 되찾아 성큼 앞으로 나아갈 시점입니다.”
- ‘희망과 기대’를 갖자는 말은 관념적이지만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구체적 징표가 있습니까.
“있지요. 희망과 기대를 충족시킬 액션플랜이 우리 전북에는 넘칠 정도로 많습니다. 주변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우선 새만금입니다.
도민들 가운데는 진척이 빠르지 않다고 ‘새만금 피로증’을 얘기하기도 합니다만 새만금은 지금부터입니다. 바다를 메워 여의도 면적의 140배인 1억2000만평의 엘도라도를 만드는 일이 ‘빨리빨리’만 가지고는 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농업용지에서 최첨단 산업기지, 더 나아가 4차산업혁명의 요람으로 변신해온 것이 새만금의 30년 역사인데, 이것은 우리나라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탈바꿈한 70년 역사에 비해 오히려 빠른 것입니다.
새만금은 이제 때를 만났습니다. 새만금은 굴뚝산업이 들어설 자리는 이미 없고, 노동집약적이거나 환경침해산업이 자리 잡을 일도 결코 없습니다. 오히려 새만금 수질문제 등을 깔끔하게 해결해 친환경 미래 산업이 들어설 메카 역할을 새만금이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 염두해 둔 ‘친환경 미래 산업’이 있습니까.
“노무현 정부 때 국정 먹거리 산업목표로 내세웠던 IT(정보기술산업), BT(바이오산업) NT(나노산업), ET(친환경산업), CT(문화산업), 그리고 ST(우주항공산업) 등 이른바 6T산업이야말로 4차산업혁명시대에 새만금이 최적화된, 최적지의 국가 산업기지가 될 것입니다.
특히 그중 CT(Culture Technology-문화 기술산업)는 예술의 본고장 전북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가장 경쟁력이 있는, 그래서 가장 빨리 새만금에 자리 잡게 해야 할 산업입니다. 마침 2023년에 새만금-부안지역에서 세계잼버리 대회가 열리는 만큼, 이 대회를 문화 잼버리로 치러내서 전북이 문화산업의 본향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잼버리 대회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대형 프로젝트가 새만금에 들어설 가능성이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과거를 끌고 거기에 현재를 얹어 미래로 가고, 그렇게 해서 미래를 만드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만 현실, 현재에 머물다 보니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지금은 미래가 현재를 만드는 시대’라고 했습니다.
미래는 상상하고 꿈을 꾸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꿈은 꿈일 뿐이고, 상상은 상상에서 끝났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다릅니다. 이제 21세기는 꿈 꾼대로, 상상한 대로 이루어지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를 전북이 맞고 있고 전북은 그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새만금은 앞으로도 30년 역사가 더 진행됩니다. 전북은 5년짜리 미래, 10년 형 미래, 20년·30년 형 새만금의 미래지도를 그려 지금부터 해나가면 됩니다. 이것은 중앙정부가 하겠지 하고 그냥 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냥 보고 있으면 30년 형 프로젝트가 50년으로 밀렸다가 슬그머니 사라질 수 있습니다, 5년 형 설계가 10년으로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만금 계획도, 설계도 우리 전북 도민이 나서고 전북도민이 지혜를 모으고 자치단체들이 앞장서 중앙정부를 압박해야 합니다. 그 일은 전북도민회와 14개 시·군 향우회가 함께 나서야 할 절반의 몫이기도 합니다.”
- 전북은 보수적이라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전북을 잘 못 보고 한 소리입니다. 전북인들은 뒤떨어졌다는 말을 싫어합니다. 전북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동학혁명이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정여립의 대동사상이 어디에서 발현했습니까. 정치만 놓고 보더라도 전북은 누구보다 진보적입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나 사상의 문제이기보다 정신·이성의 영역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거의 민주당에 몰표를 주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전북 도민, 유권자들이 통 큰 진보정신을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선자 하나하나의 면면은 차치하고 현 정부가 개혁을 달성해서 전북인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높여달라는 요구였던 것이지요. 이 점 현 집권당, 특히 그 결과 국회에 들어오신 21대 전북 출신의원들이 가슴에 담아두어야 할 민의일 것입니다.”
- 전북이 새만금에만 매달리다 꿩도 매도 다 놓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것도 전형적인 ‘새만금 피로 현상’이지요. 저는 오히려 이렇게 애기하고 싶습니다. 새만금에 공력을 쏟는 것도 전북도민이 할 일이고, 전북의 다른 살 길을 열심히 찾아내는 것 또한 전북 도민만이 할 일입니다. 전북도민회와 14개 시·군 향우회의 600만 전북도민이 모두 힘을 모아 제 밥그릇도 찾고 제 역할도 해내야 합니다.
전주에 1년에 천만 관광객이 왔다 간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천만이 왔다 가면 뭘 하나? 낮에 잠깐 왔다가 밤에는 다른 지역으로 다 빠져나가 버리는데’라고 푸념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전주나 전북의 다른 명소에 가서 자지 않고 빠져나가 버릴까요. 잠 잘 데가 마땅치 않아서겠지요. 그럼 어떻게든 전주에서 재울 궁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현실적으로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은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전주를 다녀온 한 지인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전주는 비빔밥의 고장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갔는데 식재료를 비싼 걸 썼는지 모르지만 비빔밥치고는 값이 너무 비싸더라. 바가지 쓴 기분이 들더라’고요.
저는 전주비빔밥이 좋은 재료에 맛깔스럽게 차려주는 반찬들이 너무 다양하고 맛있어서 비싼 비빔밥을 먹어도 고향 비빔밥이니 좋기만 하지만, 타지 사람들은 비빔밥은 비싸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 또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주에 관광 와서 전주비빔밥을 먹는 타지 사람들은 전주의 명물 전주비빔밥을 서울이나 자기 고장보다 백 원이라도 싸게, 맛있게 먹었다는 자랑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관광객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전북의 마음 씀씀이가 관광객을 전주에서 자고 가게 하는 출발일 수 있습니다. 비빔밥 가격을 가지고 자치단체와 업주들이 머리를 맞대어 가격을 낮추되 맛은 높이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 옛날 아침상까지 정갈하게 차려내던 전주식 온돌 여관거리를 설치하는 것은 새만금만 바라보지 않고서도 전북이 다른 지역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시작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부자 전북이 되어서 그 풍요로움으로 예부터 전해 내려오던 전라도의 정, 전라도의 넉넉한 인심을 타 지역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주는 징표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결코 멀리 붙잡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신기루가 아니라 바로 우리 전북 도민의 마음속에 있는 여유로움이고, 이제 우리는 그 여유를 다시 장착하고 희망의 내일을 보고 가면 좋겠습니다. 전주시민회가 생긴 것, 전북도민회가 의욕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은 모두 그런 마음가짐으로 고향 전북을 위해 손을 맞잡아 가자는 뜻에서입니다.”
- 전주시민회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향점은 무엇인지.
“그저 친목단체에 머물기보다는 전주발전, 고향발전을 위해 지혜와 힘을 모으는 일이라면 자치단체와 최대한 협력해가는 것이 전주시민회가 앞으로 지향해 나갈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단순한 애향모임이 아닌 새로운 개념의 미래형 시민단체, 즉 협력과 선의의 NGO라고 할까요.
다행히 서울에는 전주시민회뿐만 아니라 재경 전북 기업인 모임인 JB미래포럼과 각계각층의 젊은 지식인들이 모인 ‘전사’(‘전북사람들’의 약칭) 모임, 그리고 신지식 장학회 등 굵직한 애향포럼이 있습니다. 이들과 전북 도민회가 서로 손잡고 전주시민회 등 14개 시·군 향우회가 뒤를 받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달라진 전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 재경 향우회와 자치단체들이 함께 손을 잡고 간다면 실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전주를 예로 들어보면, 전주시와 함께 갈 수 있는 애향프로젝트는 찾아보면 많습니다. 고향방문 등 친목행사에서부터 소외·불우 이웃돕기 등 선행과 자선행사, 서울에 있는 전주 장학숙생 장학금 지급 등 장학사업과 같은 봉사·격려활동, 그 밖에 재경 전주출신 혹은 전주에 연고가 있는 기업인 및 기술인 등과 자치단체 간의 연찬회나 세미나·정책간담회 등을 정례화할 수도 있습니다. 자치단체가 바라는, 혹은 안고 있는 난제들의 해법을 함께 찾아보는 일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류균 재경 전주시민회장은
1946년 전주 출생. 전주고-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1973년부터 1985년까지 중앙일보 정치부·경제부·사회부를 거친 후 1985년 KBS로 옮겨 도쿄총국 특파원, 경제·정치부장 및 보도국장, 보도본부 보도위원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과 방송통신심의위 연예오락방송특위 위원장을 거쳐 현재 극동대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언론인 시절에는 고 박권상(부안) 전 KBS사장과 함께 중앙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과 지역의 ‘전언회’를 꾸리기도 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에 “방송영상을 통한 한류 확산에 앞장서겠다”며 방송영상을 통한 ’한류진흥의 총본산’을 선언해 관심을 모았다. 이어 2007년, 당시 송하진 전주시장과 업무제휴 협약을 체결, 전주영상테마파크 조성 등에 협력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고향에 대한 관심은 계속돼 2017년엔 민간정책 전문가 포럼인 ‘새만금 새전북21포럼’ 회장을 맡아 전문가들과 함께 전북의 발전방향을 담은 7개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포럼에서는 △새만금 항공우주산업 클러스터 △새만금 글로벌스포츠 콤플렉스 △새만금 신항 국가식품클러스터(Ⅱ) △한국인테마파크 △우리문화 치유공원 △세계한식대회 △한국의 강 섬진강 생태밸리 조성 등이 제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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