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돌아왔다.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 복싱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
바로 신준섭 남원시청 직장운동경기부 복싱 감독이다.
신준섭 감독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타국으로 떠나 있었지만 고향인 남원에 돌아오니 감회가 새롭다”며 “음지에서 묵묵히 운동하는 복싱 선수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 홀연히 떠났다 지도자로 고향에 돌아온 그에게 그동안의 근황과 지도자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한 시대를 풍미한 복싱 선수로 팬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당초 선수 생활을 마치고 모교인 원광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강단에 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코치로 선수들을 데리고 전지훈련을 갔는데 지인의 소개로 현지에서 아내를 만나게 됐죠.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건너간 뒤 청소 일부터 안해본 일이 없습니다. 주류판매업을 시작하면서 지금은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고 언젠간 재능기부 차원에서 봉사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때마침 남원시청에서 복싱 감독을 맡게 됐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가족을 두고 홀로 고향에 있지만 중학생 막내 딸과 영상통화를 하며 외로움을 달래죠.”
- LA올림픽 복싱 종목 결승전에서 당시 미국 선수인 버질 힐을 꺾고 금메달을 거머쥔 일화는 아직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됩니다.
“올림픽은 선수라면 누구나 꿈의 무대입니다. 사실 중학교까지 키가 크지 않아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고등학교 입학 후 부쩍 키가 자라면서 시내 체육관에서 복싱을 접하게 됐죠. 매순간 훈련에 집중하고 국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니 75kg급(미들급) 국가대표로 선발됐습니다. 미국 LA올림픽에서는 버질 힐과 결승전에서 만났는데 지금도 기억하시는 팬들이 있겠지만 그 선수와 굉장한 접전을 펼쳤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링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 것이 3대 2 판정승을 거두게 된거죠. 그때 기분은 무척 짜릿했고 귀국한 뒤 언론사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킨 선수’라고 소개하며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정말 큰일을 냈구나 생각했죠.”
- 복싱은 ‘헝그리 정신’을 나타내며 많은 사랑을 받다가 요즘 비인기 종목으로 위상도 떨어지고 선수들의 파이팅이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선수들의 열정은 대단합니다. 다만 복싱 종목의 엘리트 선수 육성이 필요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학교 교육에서 체육을 멀리하다 보니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겠지만 복싱 선수 육성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정책적으로 학교 스포츠 클럽을 장려해야 합니다. 미국은 고등학교 첫 수업이 아침 7시에 시작하는데 오후 2시~3시에 수업이 끝납니다. 그리고 체육이나 음악 등 다양한 클럽 활동이 가능하죠. 우리나라 실정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입시 교육에 몰두하다 보니 아이들은 이미 지쳐서 운동할 겨를이 없습니다. 미국 같은 선진국처럼 학생들이 충분히 운동장에서 뛰어놀게 해야 합니다. 그래도 요즘 국내 대회 나가보면 전국에서 400~500명씩 선수들이 출전합니다. 도내에는 전주 23곳, 익산 6곳, 남원 3곳, 군산 3곳 등 복싱체육관이 있어 여건도 나쁘지 않습니다.
- 현역 선수로 뛸 때와 지도자 생활은 어떻게 다릅니까.
“선수 생활은 치열했습니다. 챔피언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지도자 생활은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복싱이란 종목이 신체를 단련해야 하지만 정신도 수양해야 합니다. 원광대 재학 시절 김도종 전 총장님께 교양 강의를 들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철학을 배울 수 있었죠. 선수들을 양성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건 기량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발견한 순간입니다. 체육중학교, 체육고등학교는 선수층이 얇아져서 엘리트 복싱 선수 육성이 힘들지만 다른 종목도 어렵긴 마찬가지겠죠. 앞으로 엘리트 복싱 선수를 육성하는데 복싱 감독으로 이바지하고 문무를 겸비한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신준섭 복싱 감독은
신준섭 감독은 남원시 대산면 출신으로 남원농고, 원광대 및 동대학원(체육학 석사)을 졸업했다.
국가대표 복싱선수를 거쳐 국가대표 복싱 트레이너, 원광대 강사 등을 역임했으며 미국에서 귀국 후 2019년부터 남원시청 복싱 감독을 맡고 있다.
신 감독은 1984년 제23회 LA올림픽 미들급 제패에 이어 1986년 제3회 로마 월드컵 국제대회(미들급)에서 금메달을 따며 복싱계의 전설로 남았다.
현재 남원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그를 기념하는 신준섭 복싱체육관도 건립됐다.
신 감독이 부임한 이래 남원시청 복싱부는 2019년 전국실업복싱대회 등 6개 대회에서 금메달 2, 은메달 9, 동메달 8개를 따냈다.
코로나19로 대회가 축소된 올해에는 전국복싱선수권 대회 겸 2021 복싱 국가대표선수 선발대회에서 금메달 2, 은메달 1개를 획득했다.
신 감독은 “선수 시절에 쌓아온 열정과 경험을 열심히 운동하는 선수들에게 전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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