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걷고 싶은 날들이 있습니다. 쉼 없이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에 한숨 쉴 겨를도 없을 때, 마음의 짐이 무거워 온종일 축축 처질 때, 머릿속이 복잡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그럴 때 우리는 어디로라도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할 일을 내버려둔 채로 떠나기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다면 잠깐 산책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행자의 기분을 낼 수 있으면서도, 조용한 곳으로 말입니다. 전주 동서학동의 산성마을은 이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고민을 잊기에 좋은 알록달록한 벽화들이 있는, 하지만 사람이 붐비지 않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곳. 걷기 좋은 산성마을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여러 가지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이곳으로 산책을 떠나봅니다. 짧은 산책이 머리를 식히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을 하면서요. 산성마을의 입구는 전주교육대학교를 거쳐 서학파출소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앞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니, 시나브로길 코스가 보이네요. 벽화 그림은 산성마을과 원당마을 두 곳에 그려져 있습니다. 산성마을 코스는 놀멍쉬멍, 부담 없이 걸어갈 수 있고 원당마을 코스는 더 길고 오르막길이 많아 트래킹을 같이 겸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해 드리니 그날의 컨디션에 맞게 선택해보세요.
입구부터 알록달록하게 색칠된 벽을 보자니 절로 기분이 산뜻해지네요. 그런데 벽화 중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벽 이곳저곳마다 그려진 <학> 입니다. 수많은 새 중에 웬 학이냐고요? 이는 지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마을 옆의 남고산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고, 이 학의 동서쪽에 있는 곳이라 하여 동서학동이란 지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학의 날렵하고도 고고한 모습이 조용하고 한적한 산성마을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학>
산성마을을 걸을 땐 음악이 필요 없습니다. 이곳에는 실개천이라는 자체 bgm이 있기 때문이죠. 겨울인데도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방문자들의 발걸음을 더욱 경쾌하게 합니다. 산성마을의 벽화는 골목골목 그려진 다른 벽화마을과는 달리 시냇물 옆에 그려져 있어서 물소리를 더욱 잘 들을 수 있답니다. 항상 귀에서 이어폰을 빼지 않았던 분들도 산성마을을 걸을 때만큼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시길 바랍니다.
처음에는 이 실개천 위에 많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집마다 각각의 독특한 다리를 가지고 있어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제가 갔을 때는 ‘산성 돌담길’ 사업으로 시냇물 양옆에 남고산성을 떠올리게 하는 돌담을 쌓고 있었고 기존의 다리들도 돌다리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할 산성마을, 정말 기대되는걸요?
산성마을의 벽화를 더 재밌게 즐기는
세 가지 팁
산성마을의 벽화는 지역 주민들과 전문 작가 14명의 작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기자기한 그림들,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그림들, 감탄이 나오는 그림들이 이곳 산성마을에 그려져 있답니다. 하지만 여태껏 벽화 앞에서 뻣뻣하게 서서 사진 찍지 않으셨나요? 포즈를 취해 보라는 말에 어색하게 브이를 들고만 있진 않으셨나요? 그래서 알려드립니다. 보다 능동적으로 산성마을의 벽화를 즐길 수 있는 세 가지 팁!
1. 그림마다 나만의 이름을 붙여 보세요.
벽화는 <무제> 작품과 같습니다. 왜, 내가 그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꽃이 되었다는 유명한 시 구절도 있잖아요?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가던 벽화에 이름을 지어 주었을 때, 새로운 나만의 벽화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렇게 이름 붙여준 벽화들은 쉽게 잊히지 않고, 산책이나 여행길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줄 거에요. 아이들과 왔을 때도 스스로 이름을 짓게 함으로써 상상력과 창의성을 기르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무제>
2. 구석구석 숨어있는 위트있는 작은 부분들을 찾아보세요.
벽의 한쪽 귀퉁이에서 나를 향해 몰래 윙크를 하는 캐릭터들, 개의 몸에 새의 날개가 달린 동물(이 동물은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요?하하), 울타리 아래 꽃보다 더 꽃 같은 꽃 그림들 등등. 지금도 많은 부분이 당신의 시선을 기다립니다. 절대 놓치지 마세요!
3. 벽화와 한몸이 되어 보세요.
매번 뻣뻣하게 벽화 옆에 서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던 당신! 벽화들을 활용한다면 더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하기보다는 벽화와 한몸이 된다 생각하고 몸을 움직여 보세요. 자전거 그림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늉을, 여러 남자들이 의자에 걸터앉은 그림 위에선 살짝 그림 속의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딴청을 피워 보세요. 두고두고 간직할 유쾌한 사진을 남길 수 있답니다.
벽화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 부분 즈음 비슷한 그림체임을 눈치채실 수 있을 텐데요, 바로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홍찬석 교수님의 작품들이랍니다. 특유의 따스하면서도 상쾌한 그림들이 벽 여기저기를 물들였습니다. 굳이 전시관에 가지 않아도, 산성마을에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의 다양한 그림들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담장뿐만이 아니라 빌라, 아파트의 한 벽에도 크게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그림들을 바라보며 오래된 집을 허물고 다시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림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으로 재탄생할 수 있으니까요.
" 손녀딸은 많은 벽화 그림 중 이 새 그림을 가장 좋아합니다. 집이 이 근방이라 자주 왔다 갔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이 새 그림 앞에 서 있는답니다. 둥글둥글한 그림체와 색깔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에요. 저도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동화책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할머니와 산책을 나온 손녀는 오늘도 새를 가리키며 방긋 웃습니다. 동화책에서 막 나온 것 같은 그림들이 아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도민 여러분들도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산성마을로 나들이를 떠나 보세요.
산성마을에는 알록달록한 벽화 외에도 아름다운 것들이 많답니다. 추운 겨울을 무색하게 만드는 대나무숲, 햇빛에 조용하게 말라가는 시래기와 가래떡들, 대문에 붙어있는 둥글둥글한 글씨의 목판 등. 다양한 것들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걷다 보니 어느새 오르막길의 중턱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심코 뒤를 돌아봤을 때 조용히 감탄하게 되지요. 멋진 것을 보기 위해 자꾸 앞만 보고 걸어왔는데, 등 뒤에 이렇게 멋진 경치가 펼쳐질 줄은 몰랐습니다. 산성마을은 벽화뿐만 아니라 걸어왔던 나의 자취도 멋지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 한옥마을 근처에 있다고 해서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조용하고 차분한 마을이었습니다. 덕분에 걸으면서 번잡했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다양한 그림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평소 북적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기에 산성마을은 앞으로도 또 찾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처럼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께 추천합니다. "
오늘 함께 산성마을을 걸었던 어떤 이는 어느덧 산성마을의 매력에 푹 빠졌답니다. 저 역시 가끔 걷고 싶을 땐 이곳에 와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활력을, 여행객들에게는 추억을 만드는 산성마을의 벽화들! 여러분들도 꼭 한번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글·사진 = 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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