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 사회활동가
지역에서 ‘공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며 잠시 대학 시절을 돌아본다.
건축과에 다니기 전 공간이란 개념은 곧 ‘건축’이었다. 부모의 생업으로서 건축을 먼저 접했기에 ‘공간’이 무엇인지 보다는 집 짓는 일의 ‘건축’으로 공간을 이해했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 때 ‘주거’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공간감’이라는 좀 더 구체적인 단어로 공간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주거 프로젝트는 ‘내가 살 집’을 계획하기 위해 집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이끌었다. 각자가 살고 있는 이미 존재하는 집을 살펴보기도 하고,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집’을 떠올렸을 때, 자신에게는 분명하게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이미지나 느낌이라는 이름으로 공유하기도 했다. 이어 앞으로 내가 살 집은 어떨지에 대해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집과 친구가 생각하는 집은 다르다는 것, 친구 미주의 집에 대해 내가 갖는 이미지와 미주가 갖는 이미지도 다르다는 것, 미주의 방에 대해서도 미주 엄마와 미주 동생, 미주가 갖는 느낌은 다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같은 공간이라도 누가 바라보냐에 따라 다른 공간이었다.
그 결과, 내가 살 집은 각각의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는 형태를 띠었다. 거실과 부모님 방, 내 방, 오빠 방, 작업공간 등이 다 독립된 실로 만들고 지붕 없는 계단과 다리, 복도 등으로만 연결했다. 내방에서 거실로 갈 때, 비나 눈이 오면 우산을 써야만 했다. 게다가 평면상으로 거실은 원형, 부모님 방은 정사각형, 내방은 원형, 오빠 방은 사다리꼴 모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담당 교수님께서 자신의 컨셉을 1차원적으로 풀어내는 학생의 어리석은 행태를 교수님이 그리는 완성체로 가기 위해 깎아내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더 의미를 두고 무엇이든 해보게끔 하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 교수님의 교육방식이었겠지만, 사실은 나를 반쯤 포기했던 것인가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다. 그래도 덕분에 조금 특별한 시선으로 공간의 행간을 더듬어 보게 됐다.
공간은 사람에게 공간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 ‘의미’라는 안경을 통해서 우리가 머무르는 모든 공간에는 ‘색깔’이 생긴다. 이 색깔은 인상, 이미지, 분위기, 톤, 공간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 자, 눈을 감고 자신이 머물렀던 공간들을 가만히 떠올려보자. 집, 학교, 회사, 친구 집, 집 앞 슈퍼, 동네병원, 공원 등등. 각각의 공간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나 사건, 그 사건이 주는 느낌 등이 있다. 이 느낌은 같은 공간을 두고도 각각이 느끼는 바가 다르다.
병원에 대해 어떤 친구는 힘없는 회색빛 흰색이라고 표현하고, 어떤 친구는 붉은빛 검은색이라고 표현했다. 앞선 친구는 어릴 적 어머니 대신 키워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1년 동안 병상에 누워 계셨던 영향으로 병원은 밝고 깨끗한 흰색이 아닌 회색이 도는 힘없는 흰색의 이미지가 남았다고 한다. 뒤의 친구는 대학병원 레지던트를 그만두는 시기에 환자들의 피와 버거웠던 수련의 생활들이 스치며 핏빛 같은 검붉은색의 영향으로 불그스름한 검은색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렇듯 똑같은 공간이라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그들의 경험의 시간이 더해지면서 공간의 ‘인상’은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경험의 폭이 넓을수록 공간을 즐기고 영유할 수 있는 폭도 넓고 다양해지는 것이다. 공간 경험의 폭을 넓히기 위해 지역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정은실 사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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