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 사회활동가
건축학과 5학년, 한 학기를 남겨 두고 학교를 떠나 청년 교육 및 공연 기획 활동을 시작하며 서울로 올라가 7년을 살았다. 학교를 떠날 당시 지속 가능한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친환경 건축’, ‘재생’, ‘회귀’ 등이 건축공모전의 단골 주제였다. 그때, 반복적으로 들던 의문이 있었다. ‘새로 짓기 위해 기존 환경을 계속 파괴하면서 친환경을 말할 수 있는 건가?, 아파트 단지, 공원의 조경과 동선계획이 무색하게 사람들은 자신이 가고 싶은 길로 가는데 어떤 제안이 필요할까?, 일괄 반복적으로 지어지는 아파트의 공간 구획을 사람들은 잘 따르지 않는데,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해결되지 않은 의문과 고민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고, 졸업과 취업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건축은 점점 멀어져갔다. 자연스레 건축에 대한 열망도 약해지고, 그 약해진 틈으로 청년의 희망과 공감이라는 변화의 물결이 스며들어와 결국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며 전국을 순회하고 서울에 올라가 활동을 이어갔다.
그 물결 속에서 헤엄치길 7년. 문득문득 미처 마치지 못한 한 학기의 아쉬움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오래 해오던 일을 멈추고 학교로 돌아가 남은 학기를 마치고 늦은 나이에 건축설계사무소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주민자치센터, 유치원, 생태관광센터, 변전소, 의학복학관 등 다양한 성격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어느새 마음의 붙임이 생겼다. ’이 건물을 직접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언제 듣는 걸까? 어떤 것이 필요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과정이 왜 없는 걸까?‘. 물론 누가 봐도 아름답고 편리한 공간을 계획해 모두가 만족하는 공간을 뚝딱 만들어내면 좋겠지만 그런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사용자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공건축물의 대부분의 건축 과정은 그렇지 못했다. 필요한 건물의 성격과 규모만을 가지고 현상설계라는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는 배제된 채 예산과 스페이스프로그램을 두고 점, 선, 면이 요동치며 수없이 바뀌고 나를 괴롭히다가 마감을 위한 마감을 하기 일쑤였다. 결국,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으로부터 퇴사를 결정하게 됐다.
우리는 공간이 주는 영향력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변화를 원할 때, 오랜만에 집 청소를 하고 가구 위치를 바꾼다. 집이 답답하면 카페에 앉아 공부나 일을 하며 이마저도 충족하지 않을 때, 기분전환을 위해 밖으로 나간다. 공간은 발견의 영역이다. 우리는 집을 청소하고 구조를 바꾸기 전에 어떤 곳에서 내가 편안하다고 느끼는지 어떤 곳에서 집중이 잘 되는지를 천천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바꿀까?‘ 이전에 내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각자의 하루를 돌아보며 무엇을 했는지 떠올릴 때 필연적으로 공간이 배경으로 자리한다. 집에서, 학교에서, 공원에서, 직장에서, 때로는 우주에서?. 공간은 모든 것에 가장 기초하는 것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사람은 늘 공간 안에서 생활하고, 공간의 영향을 필연적으로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공간을 구성하고 새로운 관계와 질서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만든 공간이 어떤 제약과 틀로 우리의 삶의 관계와 질서를 바꿔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공간의 주체인 사용자를 가장 중심에 둬야 한다. /정은실 사회활동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