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한 이쿠얼키 대표이사
동양과 서양은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교육(Education)에 대한 관점과 행하는 방식이 달랐다. 유교에 뿌리를 둔 동양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으로부터 지식과 지혜를 전수받는 형태로, 수직적이고 수동적인 교육을 받아왔다. 반면 서양은 가르치는 사람이 화두를 제시하고 배우는 사람은 이 화두에 대해 능동적으로 질문하며 토론을 통해 사고를 정립하고 발전시키는 교육을 받아왔다. 이러한 차이는 역사적 배경만이 아닌 ‘언어’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먼저 한자에 기원을 둔 ‘교육(敎育)’을 살펴보자.
맹자의 ‘得天下英才而敎育之(득천하영재이교육지)’라는 글에서 처음 등장한 ‘교육(敎育)’은 ‘가르칠 교(敎)’와 ‘기를 육(育)’으로 되어있다. ‘가르칠 교(敎)’는 ‘배울 학(學)’의 고어인 ‘효(孝)’와 오른손에 회초리를 든 모습을 형상화한 ‘지(支)’가 합쳐진 글자이고, ‘기를 육(育)’은 갓 태어난 아기를 엄마가 품고 있는 모습의 글자이다. 즉, 부모나 교사가 아이를 가르치고 양육한다는 수직적 교육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는데, 선대의 전통적인 지식을 받아들이며 신중한 생각의 표현과 언행을 중시했던 동양의 교육 분위기도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서양의 교육을 의미하는 ‘education’을 살펴보자.
라틴어 ‘educare’에서 유래한 ‘education’은 ‘밖으로’를 의미하는 접두사 ‘e’와 ‘꺼내다’는 의미의 ‘ducare’가 합쳐진 단어이다. 즉, 서양에서 바라본 교육(education)은 인간 개개인이 가진 고유한 능력을 밖으로 꺼내 발현시키는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교육법으로 알려진 사례가 바로 유대인의 ‘하브루타(Chavruta)’이다. 하버드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모두 자유로운 질문과 토론을 중시하는 ‘하브루타’의 효과는 기존 주입식 교육의 14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서양은 언제부터 주입식 교육을 중시하게 되었을까?
그 해답은 바로 ‘19세기 산업혁명’에 있다. 사람의 육체노동을 대신하는 기계의 발명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인력이 대규모로 필요해졌고 이에 효과적인 주입식 교육이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조는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교육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IT와 인공지능 분야는 수리적 계산 능력이 아닌, 논리와 추론, 사고력 등 문제의 해결 방법을 생각해내는 능력이 핵심인데, 주입식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정해진 문제만 요령으로 풀도록 가르치던 과거의 교육 방식으로는 이러한 능력을 기를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인공지능과 IT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외치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수학 교육’의 변화는 왜 시도하지 않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초·중·고 12년간 학생 한 명이 수학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은 유럽의 교육 선진국 대비 2배인 약 15,000시간이다. 그럼에도 이공계 전공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학생이나 IT 개발 역량이 부족한 엔지니어가 수학을 새롭게 공부하기 위해 고심하며, 내가 개발한 <깨봉수학> 을 만나 ‘유레카’를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깨봉수학>
작금의 결과는 ‘수학 교육’이라는 근본 원인을 바꾸지 않는 한 결코 해결할 수 없다. IT 강국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공식과 요령을 무작정 외우고 수능 문제 유형만 반복해 푸는 낡은 수학 교육을 당장 폐기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의 수학 교육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조봉한 이쿠얼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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