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화 우리 벗님네야 화전놀이 가자스라” 봄날, 꽃놀이를 청하는 정겨운 문장이다. 소설가 최명희(1947-1998)는 《혼불》에 <어느 봄날의 꽃놀이, 화전가> 라는 부제를 달아 삼월 삼짇날의 풍습을 자세히 묘사했다. “비단같은 골짜기에 우리들도 꽃이 되어 별유천지 하루놀음, 화전말고 무었있소. 화전놀이 하러가세” 겨우내 웅크리다 봄을 맞아 기쁜 마음으로 들뜬 여인들이 꽃놀이하는 장면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어느>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자 뱀도 동면에서 깨어나 나오기 시작한다는 음력 3월 3일을 삼월 삼짇날이라고 한다. ‘삼일’이 ‘삼짇’으로 변형되어 불린 삼짇날은 봄이 왔음을 알리는 날이다. 삼짇날 봄을 즐기는 꽃놀이를 화전놀이라 하는데 야외에 나가 꽃을 보며 거닐다 화전(花煎, 꽃지짐)을 만들어서 먹으며 즐긴 세시풍속을 말한다. 《혼불》에서도 화전놀이가 오랜 전통인지라 조선사람들이 떼로 모이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일본 경찰들도 어쩌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우리 선조들은 계절에 따라 노는 시기를 두어 즐겼는데, 유교적 가부장제하에서 조선 시대 여성들은 여럿이 모여 놀이를 즐기기는커녕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궁중이나 양반가도, 일반 백성 층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일 년에 단 하루 진달래꽃이 화사하게 핀 삼짇날의 화전놀이는 야외로 나가 즐길 수 있는 여성들의 놀이였다.
화전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시대 봄놀이를 하면서 꽃을 꺾은 곳이라 하여 이름 붙은 경주의 화절현(花折峴)이라는 지명이 전해지고, 김유신 딸인 재매부인이 묻혀 재매곡이라 불린 계곡에 매년 봄꽃이 필 때 여인들이 그 골짜기의 물가에서 잔치를 가진 『삼국유사』 기록을 꽃놀이의 유래로 보기도 한다. 또한, 고려 시대에는 음력 3월 3일 즈음 들녘에 나가 봄날을 즐긴 답청(踏靑)의 풍속과 봄날 시냇가에 모여 잔치를 베풀고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3월 3일 즐기는 것이 어찌 사치함이겠는가”라는 것과, “남녀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은 태평 시대의 즐거운 일”이라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궁에서는 화사하게 진달래가 피면 곱게 차려입은 왕비가 궁녀들과 함께 진달래꽃을 따다가 ‘화전놀이’를 즐겼으며, 세도가의 부인들도 이를 따라 장막을 크게 드리우고는 며느리들도 다 모아 정성 들여 준비하고는 호세와 사치를 다투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삼짇날 화전놀이가 여성들에겐 유일한 단체 놀이이자 집단 나들이였지만, 선비들은 여성과 달리 매화를 감상하며 술을 마시는 ‘매화음(梅花飮)’을 주로 즐겼으며 풍류의 일환으로 일상에서 화류(花流)를 즐겼다. 그 중, 조선의 문인 임제(1549-1587)는 “작은 개울가에 돌을 고여 솥뚜껑 걸고 / 기름 두르고 쌀가루 얹어 참꽃을 지졌네 / 젓가락 집어 맛을 보니 향기가 입에 가득 / 한 해 봄빛이 배속에 전해지네.”라는 맛깔나는 시로 남성들도 봄철 음식인 화전을 별미로 즐겼음을 남겨놓았다.
진달래는 화전으로 부치고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술을 빚었는데 진달래 꽃잎은 먹을 수 있어 ‘참꽃’, 꽃잎에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는 철쭉은 ‘개꽃’이라고 한다. 비슷한 모습이지만,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난 뒤에 잎이 나오고 철쭉은 잎이 나오고 꽃이 피며 솜털이 난 잎에 반점이 있다. 또한, 진달래를 ‘두견화’라고도 하는데, 나라를 빼앗긴 중국 촉나라의 망제(望帝) 두우의 넋이 두견새가 되어 피눈물을 흘리면서 날아다녀 그 흘린 눈물로 산에 붉은 꽃이 피어 ‘두견화’라 불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름 따라 진달래술을 ‘두견주’라 하고 봄날 화전을 안주 삼아 두견주를 마시는 것을 선비들은 호사라 여겼다 한다. 두견주는 가람 이병기(1891-1968)의 가문에서 즐긴 계절주로도 유명한데, 전수자인 이연호(1946년) 명인에 따르면 “두견주는 집안의 진달래가 활짝 핀 것을 이용해 꽃술을 따 깨끗이 다듬어 해마다 거르지 않고 담고 있다”고 하며 가을 국화주와 대표적인 계절주라 했다.
삼짇날을 즈음하여 즐긴 시절 음식으로 조선 후기 《동국세시기》에서는 화전과 붉은색 물을 들여 꿀물에 띄운 수면(水麵)을 소개했으며 각종 문헌 속의 시문이나 조리법에 삼짇날 즐긴 음식이 등장한다. 화전을 부쳐 먹으며 즐긴 놀이로는 꽃쌈(花戰) 놀이가 있다. 꽃쌈은 여러 가지 꽃을 꺾어서 꽃의 수가 많고 적음을 겨루기도 하고 꽃이나 꽃술을 맞걸고 당겨 끊어지는 쪽이 지는 내기 놀이이다.
또한, 화전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담은 화전가(花煎歌)를 지어 발표하며 문장을 뽐내기도 했다. 혼불에서 등장하는 <화전가> 를 살펴보면, “너의 꽃은 무엇인가...홀로피는 국화꽃은 절개있다 대실댁 우리종부 꽃이로다” 며 집안 여인들의 특징을 꽃에 빗대고는, 남편의 이야기에서는 “우리 낭군은 유식하지만 가난하고 돈 없으니 허사”라고 한탄하는 깊은 속내를 말하고, “널뛰기 그네뛰기 다리밟기 화장하는 즐거움은 남모를 여자의 기쁨”이라 표현했다. 단 하루, 해방의 날이었지만, 풀어내고는 다시 일 년을 견뎌낸 그녀들의 동력이 화전놀이에 담겨있다. 화전가>
봄날 꽃놀이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 늙어지면 못 노나니 /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라는 노래는 그야말로 떼창을 부르며 어깨춤을 추던 화전가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그 ‘차차차!’가 건네는 맛을 알 리가 없고, 꽃놀이로 당시 시간을 즐길 줄 알았던 선조들이야말로 진정한 흥과 멋을 알던 멋쟁이였던 것 같다. 봄은 마음에 먼저 든다했다. 봄꽃이 화사한데도 코로나19로 만끽하지 못하는 우리의 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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