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드라마나 소설에서의 죽음은 쉽고 현실의 죽음 또한 허무하다. 억울한 죽음을 보며 삶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고난과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삶을 조금 알 것 같다가도 익숙해질 때쯤 시련이 찾아온다. 꼭 새것처럼 초면처럼 말이다. 그래서 행복하면 불안하기도 하다. 언제 시련이 찾아올지 몰라 대기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은 불쑥 찾아오고 나를 혼란에 빠트린다.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 의 소설 속 인물이 바이러스가 세계를 뒤덮고 멸망 직전까지 가게 되는 상황에서 “여기서 시작하면 좋겠어. 새로운 인생”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잃고 억울한 죽음을 눈앞에 보고도 불행한 삶을 원망하는 게 아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자는 말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말은 실패하더라도, 힘든 상황이더라도 도전을 해보자는 말처럼 들렸다. 가진 것 하나 없고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희망을 가진 인물이 부러웠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준다면 당장 리셋하고 돌아가는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내 마음가짐에 따라 삶을 개척할 수 있는 거였다. 해가>
소설 속 인물들에 비하면 나의 고난과 시련은 참 초라했다. 잃은 것 없이 감사한 줄 모르고 불평했던 지난 삶을 돌아보며 반성했다. 코로나로 인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억울했지만 생각지 못하게 얻은 것도 있었다. 코로나 이후 깨달은 건 현재를 소중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를 살고 있으니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에 할 수 있다면 하고 후회하자는 생각이 커졌다.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처럼 다시 시도해보자는 말을 떠올릴 것이다.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고 글을 읽으며 마음이 바뀌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누군가의 말을 빌려 전할 뿐이지만 실패하더라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처럼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도전한다는 것은 어렵고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막상 도전하고 용기를 내도 노력으로만 안 되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사회는 불공평하므로 출발선이 다르면 같은 시간 안에 도착하지 않는다. 그럴 땐 바꿀 수 없는 것은 빠르게 인정하고 올바른 방법을 찾는 것이다. 고난과 시련은 내가 변화하는 과정의 필수코스이기에 피하려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믿고 바라는 순간을 그리다 보면 언젠가 원하는 날은 올 것이다.
소설 속 인물처럼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단순히 행복을 위해 사는 삶, 내 집 마련이 꿈인 삶, 돈이 넘쳐서 써도 타격이 없는 삶, 건강만 하면 되는 삶. 사람마다 원하는 삶이 다를 것이다. 최근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 들게 한 건 드럼을 배운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일 테지만 나는 어렵게 하루에 한 시간, 나에게 투자하는 용기를 냈다.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또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현재를 되짚어 봤다.
원하는 날이 막상 와도 시련은 계절처럼 올 것을 안다. 잊지 말 것은 시련이 와도 언제든 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바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 작은 희망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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