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내리자 시내버스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빈자리가 생겨 앉으니 기사님의 뒷모습과 수다스러운 동네 아줌마도 보였다. 촉촉이 비가 내리는 차창밖 풍경에 젖어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아까부터 띄엄띄엄 앉은 손님 중에 왼쪽 창가에 앉은 아주머니의 옆모습에서 누구인가를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드디어 생각이 났다.
그 아주머니가 누구인가를 알아낸 순간, 단 몇 초 사이에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버렸다. 젊은 시절, 같은 직장에서 나는 서무과 일을 보고 그 분은 국어 선생이었다. 총각선생 두 분 중에 X총각선생이 여 선생의 오빠 친구였다나?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서로 챙겨주는 것으로 보아 좋아하는 사이로 알았다. 그러나 어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이던가?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아리 보고 허벅지 보았다고 말하는 세상이다. 남녀 관계는 예민한 일이어서 어떻게 그 속을 알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두 사람 사이를 겉만 보고 판단했으니, 나도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어느 날 오후였다. 갑자기 국어선생이 나한테 자기 오빠를 소개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당시 그녀의 오빠는 서울에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오빠가 없는 나로서는 호감이 갔다. 그리고 오빠가 있는 그 여 선생이 부러웠다. 그런 일이 있은 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오빠를 내게 소개하려는 의도를 알게 되었다.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인가, 퇴근하려고 신장을 열어보니 샌들 한 짝이 없어져서 한참 찾았다. 그때 총각선생이 해성처럼 나타나 복도 천장 벽에 걸린 내 구두 한 짝을 찾아주는 게 아닌가? 장난을 치려고 본인이 해놓고 본인이 찾아준 셈이다.
나는 그때 확실히 알아차렸다. 등불을 켜 됫박으로 덮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그 총각선생이 국어선생을 좋아한 게 아니라 서무과 직원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 들통나고 말았다. 이것을 눈치챈 여 선생은 그래서 나를 자기 오빠와 맺어주려고 했던 것이다,
사람을 평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의 몸, 그 중에서도 얼굴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옷이 날개’라는 속담도 있는데 하물며 얼굴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다만 외모지상주의, 외관 중심주의에 집착하면 개인이나 사회나 많은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든다,
얼굴 및 몸의 성형에 관해서는 사람에 따라 나름대로 찬반이나 장단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각각 가지고 있으나 나이가 들어서인지 나로서는 겉모습보다는 속 마음을 더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다. 육안보다는 <마음의 눈> 으로.....‘겉모습과 속마음이라는 제목을 접하니, 문득 빅 토르 위고 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1956년도 영화 <노트르담의 꼽추> 가 생각난다. 남녀관계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의 바탕을 겉 모습보다는 속마음에 두어야 굳건하게 오래 가리라는 생각이다. 노트르담의> 마음의>
인간의 특징 중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반드시 속마음과 겉모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속마음은 울면서 겉으로 웃고, 속마음은 싫어하는 데 겉으로 좋다는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예를 들어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 ‘아~ 시원하다’고 말하는 경우처럼, 인간의 말과 행동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다양하며 독특할 수 있다. /최정순
최정순 수필가는 196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수필가로서.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대한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속 빈 여자‘외 4권의 수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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