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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사과와 사회의 품격

일러스트=정윤성
일러스트=정윤성

15년 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을 무혐의 처분해 사건의 진실을 밝히지 못했던 검사가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를 만나 사과하고 용서받고 화해한 일이 화제를 모았다. 지난 8월 피해자가 사는 전주에 직접 찾아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한 일이 4개월 뒤인 지난 13일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김오수 검찰총장은 물론 검찰 내부에서 해당 검사의 용기를 격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난 2005년 2월 3년차 검사로 전주지검 군산지청에 발령받아 2000년 8월 발생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후속 처리를 맡았던 김훈영 검사(현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1부장) 이야기다. 그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처음부터 직접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가 아니다. 피해자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을 때 뒤늦게 잡힌 진범을 무혐의 처분한 검사다.

김 검사는 전임이었던 선배 검사가 진범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하는 등 수사가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사건을 넘겨받아 2006년 최종적으로 마무리했을 뿐이었다. 이후 징역 10년형을 모두 채우고 2010년 만기 출소한 피해자는 재심을 통해 2016년 무죄를 선고받았고, 진범은 구속기소돼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뒤 김 검사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뒤 오랜 번민과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 8월 피해자를 만난 김 검사는 사과와 용서와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 피해자도 김 검사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들여 지난 15일 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했다.

같은 날 전주지법 군산지원에서는 또 다른 재심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동료 선원이 북한을 찬양한 사실을 알고도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반공법상 불고지죄)로 기소돼 1969년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1년 형을 받은 임도수 씨와 양재천 씨는 수사기관의 불법 구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허위 자백한 사실이 인정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양 씨는 지난 1973년 12월에, 임 씨는 작년 9월에 세상을 떠났지만 52년 만에 ‘빨갱이 전과’란 누명을 벗었다.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국가가 국민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 많이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며 재심 결과를 시작으로 고인이 된 피고인들의 명예가 조금이나마 회복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책임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 사과한 김훈영 검사는 ‘품격 있는 검사’를 강조해 왔다고 한다.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와 냉철한 판단, 합당한 처분과 결정을 내릴 능력, 그리고 누구에게든 경청하고 예의를 다하는 것을 검사의 품격으로 후배들에게 당부해 왔다고 한다. 김훈영 검사의 품격이 우리 사회 품격의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강인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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