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제왕운기>, <동국통감> 등 사료 기록
“(고)조선왕 준 남쪽으로 내려와 스스로 왕 올라”
일부 문헌사료 준왕 남하 지역 금마군(익산) 지목
역사학계 마한 소국 54곳 중 전북은 20곳 비정
만경강 이남, 황방산 일대 군집묘 수로 유물유족 발굴
“소국으로 존재하다 4세기 중엽 백제에 복속된 것으로 파악”
지난달 31일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역사문화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 인해 전북은 전남에 이어 마한역사문화권의 범주에 포함됐고, 전북 마한사를 보존‧관리‧발굴‧복원하는 데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마한사를 검증하는 역사연구도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북 마한역사문화권에 대한 이론과 쟁점, 과제를 살펴본다.
△문헌 기록과 유물‧유적=마한과 관련된 기록은 <고려사> , <제왕운기> , <동국통감> , <동사강목> 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문헌사료인 <삼국지> 와 <후한서> , 일본 사료인 <일본서기> 에도 등장한다. 일본서기> 후한서> 삼국지> 동사강목> 동국통감> 제왕운기> 고려사>
이들 사료에는 (고)조선왕 준(準)이 위만에 패한 뒤 남쪽으로 내려와 마한을 정복하고, 스스로 한왕에 올랐다고 나와 있다.
특히 <제왕운기> 와 <고려사> 는 준왕이 내려온 지역을 금마군(익산)으로 지목하고 있다. 고려사> 제왕운기>
마한의 정치‧사회적 규모도 엿볼 수 있다. <삼국지> 에 나온 “만여가(萬餘家)로 구성됐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상당히 큰 규모의 소국이 존재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은 관련 연구를 통해 “문헌사료와 군집된 유적군과 비교해보면 백제로 영역화 되기 이전, 강력한 세력을 가진 정치‧사회적 집단이 존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국지>
관련 유물‧유적의 발굴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 만경강 이남과 황방산 일대에는 대형 군집묘 구상유구(U자 모양 수로)가 발견됐다. 익산 영등동과 율촌리에서는 마한 초기 문화권을 보여주는 점토대토기들이 다량으로 묻힌 주구묘와 분구묘가 잇달아 발굴됐다. 김승옥 전북대 교수는 관련 연구를 통해 “국읍을 중심으로 상당한 규모의 인구가 밀집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북 지역 마한소국 규모와 존속 시기=마한소국을 연구한 역사학자 정인보(전 연희전문대 교수)‧이병도(전 서울대 교수)‧천관우(전 동아일보 주필)‧박순발(충남대 교수)의 견해를 종합하면, 마한에 속한 소국 54곳 중 20곳이 전북에 위치한다. 이들은 군산과 익산, 김제, 부안, 정읍, 고창, 저주, 완주, 진안, 순창, 임실, 남원 등에 분포돼 있다. 문헌사료와 고분, 토기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도출한 견해다.
이들 소국은 기원전 3세기 말∼기원 후 4세기 중엽까지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최 이사장은 "각종 문헌사료를 보면 백제 근초고왕 24년(369년)에 침미다례(忱彌多禮)비리벽중포미지반고사읍(比利辟中布彌支半古四邑)을 복속했다고 나온다"며 "침미다례는 해남과 강진, 고흥, 비리벽중포미지반고사읍은 전주, 부안, 김제, 정읍, 태인에 존재한 소국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북에 있는 마한소국들은 4세기 중엽 백제에 복속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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