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좋아하는 가수가 한 명쯤은 있듯 나도 역시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 좋아하는 가수가 많아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수의 개성이 뚜렷한 록을 좋아한다. 내가 록을 좋아하게 된 계기에는 데이비드 보위가 있다. 그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노래들은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아직도 여전히 그의 노래를 들으며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 탓에 특히 인생에 예기치 못한 순간에 우연히 그의 노래가 나올 때마다 그 순간들이 한 장면처럼 또렷하다. 그중에서도 내게 특별하게 남아 또렷한 순간들을 말해보자면 먼저 남이 들려준 space oddity를 들었을 때다. 나는 2020년 여름에 영화제 서포터즈로 활동했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영화제라 잘 곳이 필요했던 터라 숙박 애플리케이션을 둘러보다 여자 호스트가 혼자 사는 투룸에 남는 방에 묵는 조건으로 일주일간 지내게 되었다. 서울 상경 첫날 사람들의 속도에 정신없이 발맞추며 숙소에 도착했을 땐 어안이 벙벙해 멍하게 낯선 침대에 앉아있었다. 나의 상황을 눈치챈 호스트분이 맛집, 교통 가이드를 해주시다 서로 마주 앉아 몇 시간가량 얘기하게 되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나는 그 집에 머물며 그분과 밤마다 부엌 식탁에 앉아 부엌 등만 켜둔 채 작게 음악을 틀어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얘기하던 도중, 그 분께서 내게 영상 하나를 틀어주셨다. 영상은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안에서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를 부르는 커버 영상이었다. 10인치가량 되는 태블릿기기 화면에서 보이고 들려지는 비행사의 노래는 새벽 감성인 건지, 작은 부엌 조명등 하나 켜둔 탓인 건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엔 현실 스위치를 잠시 끈 듯한 새로운 느낌이었다. 두 번째 순간은 영화에서 데이비드 보위 노래를 만났을 때다. 고등학교 때는 데이비드 보위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데이비드 보위를 유독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내가 스무 살 때 모든 대학도, 취업도 하지 않아 인생이 정체되어있다고 느끼던 시절 <월플라워>에서 엠마 왓슨이 달리는 차 안에서 캐비닛을 열고 두 팔을 벌려 자신에게 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HEROES, 레오 카락스라는 감독이 궁금해서 본 <나쁜 다니어라 방이 길거리를 달릴 때 나온 MODERN LOVE는 순간에 매료되어 한동안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를 주야장천 돌려 들었다. 이후에도 나는 영화로 <조조 래빗>,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잇츠 퍼니스토리> 등 좋은 영화들에서 그의 노래들을 만났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던 시절 호스트의 집에서 들었던 순간, 무기력에 빠져 월플라워, 나쁜 피에서 만났던 순간이 기억에 새겨진 이유는 그의 노래는 내게 이유 모를 해방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원히 허물지 않을 것 같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처럼 보위의 노래엔 그런 힘이 있다. 누구나 살다 보면 걸음을 막는 벽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벽 앞에 서서 허물고 뛰어넘을 것인지, 뒤돌아갈 것인지 미련을 두고 고민한다. 나도 가로막는 벽 앞에 뒤돌아 가고 싶을 때마다 앞에 놓인 벽 너머에 있는 그의 노래를 듣는다. 비록 그는 우주로 떠났지만, 음원으로, 영화로 남은 그의 노래는 나를 막는 벽 너머에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 너머를 꿈꿀 때마다 벽 너머에 가까워질수록 자유로워진다. 단 하루뿐인 자유일지라도!
/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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