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 도민체감도는 제자리”
새만금 국토확장과 식량주권 확보라는 대명제로 1991년 시작
전북도민 영토확대와 지역발전에 부푼 꿈
시대가 바뀌면서 새만금에 요구되는 모습도 달라져
정치인들 공약 단골메뉴로 재탕·삼탕 거치면서 누더기 신세
새만금은 1986년 1월 서해안 간척사업 장기개발사업 수립과 1986년 3~12월 새만금지구 계획구상 및 답사실시, 1987년 10월 17일 새만금지구 타당성 조사를 거쳐, 여야가 담판을 지은 끝에 1991년 11월 28일 대장정의 시작을 알렸다.
국토확장과 식량주권 확보라는 대명제로 시작한 새만금은 급변하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신산업 자유 경제구역으로 지향점이 완전히 변화했다. 그러나 그동안 새만금은 3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하드웨어 구축조차 완료되지 못했으며, 정치인들의 선거 도구로 활용되다 버려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새만금 사업의 발단과 뿌리
새만금 간척사업은 우리나라 인구가 급증하고, 식량이 부족하던 1970년대 그 필요성이 고개를 들었다. 3000만 명 수준이던 대한민국 인구는 80년대 4000만 명을 돌파, 당시에는 미래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적 차원의 국토확장과 식량 주권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전북의 서해안에 대단위 간척사업을 하자는 구상은 1978년 ‘전북일보’ 김철규 기자(시인·전 전북도의회 의장)의 기사를 통해 첫 고개를 들었다.
김 전 기자는 “당시 첫 기사를 썼을때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면서 “편집국 동료들에게 황당무계한 기사를 쓰고 있다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관선 시절이던 전북도 내에서도 간척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황인성 (前)전북지사가 1985년 농림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정부차원의 검토가 본격화됐다”고 설명했다.
1991년 민선 지방자치 이전 관선 시절에는 차관급인 도지사가 장관급으로 승진하거나 영전하면 장관이 도지사로 있던 지역 현안이 탄력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환경파괴 논란과 예산 낭비라는 지적으로 새만금 사업은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그러다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인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부안출신 고(故)이희천 당시 국회의원이 당 총재였던 고(故)김대중 (前)대통령에게 이를 영수회담의 카드로 제안했고, 1990년 김 총재가 고(故)노태우 (前)대통령에게 시행 확답을 받아냈다.
새만금은 추진과정에서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전북도민들의 영토확장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컸다. 전북의 경우 과거 군사정부 시절 논산·금산이 충남으로 편입되면서 이에 대한 보상심리가 매우 컸다. 농경에서 산업화 시대로 넘어가던 당시엔 영토만 확보된다면 경제는 자연스럽게 살아날 것이란 기대도 작용했다. 향후 5000만 명을 넘길 것이란 인구 예측도 새만금 사업 추진에 힘을 실어줬다.
급변하는 시대적 요구
정부가 새만금 사업계획을 세우던 1980~90년대엔 식량주권 확보라는 대전제 아래 농지 매립이 사업의 주를 이뤘다. 그러나 30여 년이 시대는 산업화를 넘어 세계화 시대로 진입했고, 갈수록 국내 농산물, 특히 쌀 소비가 줄어들면서 계획이 계속 수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전북정치권은 물론 유력정치인들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전북을 찾아 다양한 새만금 공약을 내놓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친환경이 세계적 헤게모니로 부상하면서 새만금은 사업은 한동안 멈춰섰다. 사업이 재개된 후에도 새만금을 어떻게 개발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 못했다. 나중에는 수질 문제가 겹쳐 새만금 수면을 고려하지 않은 해수유통 주장이 전북정치권에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농지-산업화단지-친환경단지라는 여러 주장 속에서 새만금 계획은 누더기 신세를 면치 못했고, 나중에는 개발보다 공약 그 자체로 정치인들이 새만금을 활용하는 데 이르렀다.
대선 주자들의 전북 공약은 가장 사람이 많이 사는 전주나 익산보다도 새만금에 국한됐다. 새만금은 결국 대부분 전북도민들은 이렇다 할 체감을 느끼지 못하고, 정치인이나 공무원만 체감하는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시간이 갈수록 중앙정치권의 전북공약에서 전주나 익산, 군산 등 중심지는 완벽하게 소외됐고, 인구가 거주하지 않는 새만금은 단골손님으로 정치인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선거가 끝나면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모르는 것이 새만금의 현실이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5년부터 사업에 가속도가 붙었지만, 여전히 정치권은 새만금을 가보지도 않은 채 새만금 공약을 남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제 새만금은 산업화 거점을 넘어 세계화 거점으로 각광받고 이에 맞춘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기본인프라부터 갖춘 공약을
새만금 공약은 말만 화려할뿐 실속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가 국제공항과 항만 등 기본인프라 구축에 매우 인색한 기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부개발 지연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는 전북정치인은 매우 드물다. 실제로 새만금 국제공항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자신의 소신을 밝힌 전북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부 정치인의 경우엔 한편에선 새만금 발전을 약속해놓고선 뒤로는 새만금 반대단체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이중플레이를 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새만금 개발 성공은 인구유입 효과가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서야 비로소 가능하지만, 친환경 논리로 태양광 패널을 광활한 땅에 뒤덮는다던가, 배수갑문을 완전개방함으써 담수화라는 새만금 개발 거대명제를 무시하는 게 전북정치권의 현주소다.
지금계획대로라면 새만금 국제공항은 2029년에나 개항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급변하는 시대적 논리에 따라 장담이 불가능하다. 새만금 신항만은 다른 지역 주요항만의 규모에 훨씬 미치지 못하며, 부산항, 인천항, 광양항, 마산항, 평택항, 목포항 등이 더 많은 국가적 혜택을 받고 있다. 미래 청사진은 가장 화려한 데 비해 실속은 가장 없는 게 새만금 신항만인 셈이다. 지금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세계자유 경제구역이자 두바이와 같은 관광지는인 새만금은 100년이 지나도 어불성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만금 메가시티 조성, 새만금 특별위원회 대통령 직속 설치 및 특별회계, 새만금 국제투자진흥지구 지정 등을 약속했지만, 새만금 특별위원회 대통령 직속 설치 공약조차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20개가 넘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를 줄이려는 정부 방침을 세웠다. 사실상 새만금특별위원회 설치는 물 넌거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앞서 새만금을 지역핵심 지역 공약으로 내걸고, 인수위의 TF형 특별과제로 선정하기도 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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