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추석 연휴가 지나니 삼례의 저녁 공기는 선선해졌다. 여름엔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보이는 해는 지친 기색 없이 밝을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가을이 왔는지 한껏 붉다. 어떤 날은 오늘도 무사히 서로의 몫을 다 했다는 메시지 같아 잠시 멈춰서 바라보는 날도 있다.
이번 9월은 조금 특별했다.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학교 승인이 떨어져 학과 MT에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3년 만의 학과 MT에 대절 버스 기다리는 도중에도 학년 별로 옹기종기 모인 학생들의 들뜬 에너지가 내게도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에너지에 압도된 나는 괜히 혼자 어설퍼졌다. 신나게 숙소를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 있어도 어설픈 마음은 가시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있다가 모두 별 탈 없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돕자는 결론을 끝으로 생각을 끝낼 수밖에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도착 후 각각 학년별로 조를 짜고, 너나 할 거 없이 재밌어 하는 학생들을 보며 ‘젊어서 좋겠다.’ 싶은 마음을 안고 숙소에 올라와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잠시 숙소에 들어온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그 순간 내가 대학생이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쯤 되니 배도 부르고 마음도 편했다. 여전히 들떠 있는 표정으로 레크리에이션을 준비하는 저학년생들, MT의 기억을 좋게 남겨주고 싶어 분주히 움직이던 고학년생들을 보며 시간이 지나고 인물이 변해도 큰 상황은 똑같구나 싶은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났다. 학년을 불문하고 좋은 건 배우고 아닌 건 고쳐가며, 모든 학년이 다같이 MT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계획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전체 인원 모두 무탈하게 돌아오는 버스 안 창밖으로 학교 간판이 보였다. 간판을 보니 안도감과 함께 학생이었던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 생각났다. 한때는 같은 환경에서 공부했지만, 현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일하고, 도전하는 친구들. 아직도 나는 주말이 지나면 여전히 학교로 걸음을 재촉하고 전공 수업을 듣던 강의실 복도를 지나온다. 매일 같이 강의실에 앉아 떠들고,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다 하루를 꼬박 보내던 우리가 있던 비워진 공간에 우리와 같은 친구들이 채운 모습을 볼 때면 한 번씩 신기할 때도 있다.
현재 전부 각자의 위치에서 잘 지내고 있지만, 뜸해진 만남은 달라진 환경 때문인지 어느 한 명이 털어 놓는 고민의 깊이가 깊어질 때마다 대화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현재는 각자 놓인 처지를 전부 알 수 없으므로 저울이 다시 수평을 찾을 때까지 우리 사이엔 적막이 흘렀다. 그럴 때마다 이제는 고민을 모두 이해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어 거리감을 느끼지만 모든 고민에 지고 싶지 않았던 시절을 같이 지나온 우리는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 고민도 있고, 고민은 계속 생긴다는 것을 이젠 알기에 그저 서로가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대한다. 어쩌면 우리 사이의 적막은 시절을 같이 보낸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 같다.
달라진 해를 마주할 때면 한 계절을 지나왔다는 생각에 속절없이 흘러버린 시간의 냉정함을 몸소 느낀다. 더불어 우리가 같은 시절을 보냈던 순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져 조금 더 낯설고 아련해 진다
. 결국 아련함은 남겨진 나만 느끼는 미련 같아서 그리움으로 바꾸고, 이마저도 청승 같아서 우리에게 침묵이 될까 봐. 끝내 밥 먹었어? 라는 말로 포장해 무심하게 전한다.
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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