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불안장애 환자가 의사에게 물었다. 언제쯤 다시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냐고. 그랬더니 의사는 “불안장애는 무조건 낫는 병이에요. 지금의 불안과 증상들이 앞으로 더 나아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환자는 불치병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으나 ‘무조건’ 나아질 수 있다는 완고한 그의 말에 적어도 이 불안에는 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나의 불안
어느 날 테이블 위에 놓인 메모장에 무심코 한 문장을 끄적였다. ‘불안한 내일이 없는 오늘을 살고 싶다’라는 말이었다. 다음 날 그 종잇장을 다시 보니 왠지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곧 자신이 측은해졌다. 그 글자를 적을 때는 낮이었다. 흔히 말하는 감성이 충만해지는 새벽 시간도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을 육성으로 말을 내뱉는 것보다 텍스트로 떠올리거나 필기하는 게 더 익숙한 나는 누구에게 말 못 할 속마음을 메모장에 적어내는 습관이 있다. 이때 내 안에 불안이 존재하다는 걸 느꼈다. 한번 시작된 불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거대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불안에 의해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점점 나의 일상을 침범하기 시작했고 나의 세계를 지배했다.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곧 공황발작(panic attack) 증상이 나타났고 병원을 찾았다. 이를테면 비행기를 타는 것도, 단 10분 거리의 운전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것도, 치과 진료도 불가능해졌다. 9월에 예정되었던 비행기 표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공포로 다가오고 결국 해낼 수 없게 된 순간 회복에 대한 갈망이 높아졌다. 어느덧 두 달째 약을 처방받으면서 “무조건 지금보다 점점 나아질 것”이라는 의사의 말처럼 서서히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고 나만의 속도로 회복 중이다.
△ 사회적 불안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전체 자살사망률이 감소한 것에 비해 청년들의 자살률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21년 기준 5년간 정신질환으로 의료기관을 찾는 청년들이 15.2%가량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불안과 우울은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는 곧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물론 단순한 ‘불안감정’과 공황발작 증상을 동반하는 ‘불안장애’는 서로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한 여유와 성찰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채 바쁘게 살아가는 청년들. 불안한 미래이지만 누구보다 더 빨리 달려가야만 인정받는 상황 속에서 정작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현재 청년들은 무엇에 가장 불안을 느끼는지 궁금했다. 이에 흥미로운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찾았다. 2002년 20대 초반 청년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당시 외모와 건강이 31.9%, 공부가 30.8%를 차지했다. 10여 년이 흐른 2020년도에는 직업이 40.3%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02년에는 8.6%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청년 불안의 현주소를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 세대의 불안을 단순화시키고 단편적으로 결론짓고 싶진 않다. 그저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불안한 상황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싶을 뿐이다.
덴마크의 심리학자 피아 칼리슨의 저서 『생각이 많아 우울한 걸까, 우울해서 생각이 많은 걸까?』에서는 “생각의 방향이 나를 향할수록 통제력을 잃는다. 우리들의 생각은 기차가 아니라 기차역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기분, 우울감과 불안으로 인해 본인에게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게 이 글귀를 전하고 싶다.
/강소은 미디어공동체 완두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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